9월 16일 자정이 되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D-day였다. 2주 동안 건조하고 드디어 비누를 개봉할 수 있는 해금의 날이었다.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한지를 뜯어보았다.
자스민 넥타 비누 (정면)
자스민 넥타 비누 (윗면)
비누 윗면에는 내가 주문했던대로 찻잎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한 채 뿌려져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S 공방 측에서 비누를 이층으로 만들어주었는데, 그래서 더욱 고아하고 아름다웠다. 비누는 전반적으로 밀키한 찻물 색이 났다. 위층이 색이 더 연했고, 아래층이 좀 더 짙으면서 여기에도 찻잎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무척 고급스럽고 우아한 비주얼에 감격했다. S 공방이 보내준 사진으로 이미 낱개로 잘린 모습을 보긴 했지만, 직접 실물을 보니 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감동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건조되면서 향이 다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웬걸, 처음 도착했을 때와 똑같이 진한 자스민향이 풍겼다. 비누 향을 맡으면 맡을수록 마음이 정화되어가고 행복해졌다. 건조도 너무 잘 돼서 손으로 직접 비누를 만져보니 제법 단단했다. 힘을 엄청 준다면 자국이 남겠지만, 적당히 잡아봤을 때 무르지 않고 꽤나 경도가 있어서 매우 성공적으로 건조된 상태란 걸 알았다.
당장 비누 하나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비누의 실물을 영접했으니 다음은 직접 사용해볼 차례였다. 개봉할 때도 실감했지만 씻으려고 다시금 비누를 손에 쥐어보니 무르지 않고 정말 단단했다. 2주만 건조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새삼스레 감탄이 나왔다.
욕실에서 찍은 자스민 넥타 비누
손에 물을 묻혀 비누를 문지르자 오일리하게 발렸는데, 피부에 닿는 느낌이 상당히 산뜻해서 좋았다. 함유된 동백씨 오일 때문에 부드럽고 실키한 느낌도 살풋 들었다. 거품도 우유처럼 밀키하고 풍성하게 잘 났는데, 매우 가볍고 조밀했다.
예상치 못한 건 찻잎의 스크럽 효과였다. 윗면에 뿌려놓은 찻잎이 확실히 스크럽이 잘 되었는데, 이층구조로 제작되면서 비누 안에 들어간 찻잎들도 스크럽 효과가 났다. 손으로 비누를 비비면 윗면에 올려놓은 찻잎이나 비누 안에 들어있던 찻잎이 부드럽게 마찰되는데 이게 정말 기분 좋았다. 너무 거칠거나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스크럽 효과가 났다. 가끔씩 떨어져나오는 찻잎들도 피부에 스치면서 함께 비누칠이 될 때의 감각이 너무 좋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비누칠하자 오일리하게 발리는 모습, 욕실에서 찍은 자스민 넥타 비누의 차가루가 뿌려진 윗면, 스크럽을 하니 찻잎들이 몇몇 떨어진 모습 1, 2
보습력은 이때까지 사용했던 모든 비누들 중에서도 가장 좋았다. 역대급으로 최고여서 손의 수분감이 70% 이상 고스란히 남겨지며 보존되는 느낌이었다. 세정력도 너무 좋아서 씻고나니 손이 부드럽게 뽀독뽀독거렸다.
차 비누답게 향도 일품이었다. 다 씻자 손에 자스민 오일 뿐 아니라 찻물 향도 은은하게 났다. 맡아보니 잔향이 너무 좋았다. 부드럽지만 짙어서 제법 오래 향이 갔다.
씻고나니 굉장히 고급스럽게 잘 씻긴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손이 씻기 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산뜻하게 가벼워진 것 같았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고의 비누였다. 원료들이 좋을 뿐더러 자스민 넥타와 동백씨 오일의 조합이 기막히게 잘 어우러져서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최고급 비누였다. 생전 경험해본 그 어떤 비누들보다도 좋았다. 단언컨대 압권이었다.
그날 밤, 이 비누로 샤워도 했는데 마찬가지로 이루 말할 데 없이 좋았다. 손을 씻을 때도 정말 좋았는데, 전신과 머리까지 씻어보니 더욱 깊이 체감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비누가 너무 좋다보니 자꾸 써보고 싶어져서, 이미 그전에 여러 번 씻은 바람에 비누가 처음보다조금 얇아졌는데도 무르지 않고 단단했다. 보통 천연 비누는 쓰다가 작아지면 살짝 물러져서 쉽게 으스러질 때도 잦은데, 놀랍게도 이 비누는 처음과 동일하게 단단했다. 내구성이 정말 좋다고 느꼈다.
처음 손을 씻었을 때는 직접 만져보고 싶어서 비누망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샤워를 할 때는 비누망을 이용해보았다. 비누칠을 하자 오일리하고 적당히 두텁게 잘 발렸다. 발리는 느낌도 밀키하고 부드러워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동백씨 오일을 넣어서 가벼운데, 마냥 동백의 실키한 느낌이 있기보다 찻물 정도의 맑은 무게감이 있었다.
샤워할 때는 차 비누를 비누망에 넣어 사용했다. 문지르면서 떨어진 찻잎이 손목에 보이기도.
앞서 말한 것처럼 스크럽 효과도 정말 대단했다. 비누를 비누망에 넣어 몸에 대고 직접 문지르니 까슬까슬한 스크럽 효과가 확실하게 있었다. 심지어 소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 소금은 알갱이가 뾰족해서 자극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는데, 차가루의 덩어리가 크다보니 스크럽은 잘 되는데 전혀 아프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게 문지르는 느낌만 났다. 신기한 건 찻잎도 문지르면 바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하나 또는 두어개씩 떨어졌다. 비누가 단단하고 형태도 잘 잡혀선지 내구도가 높아서 차가루를 잘 잡아주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각질 제거 효과도 너무 좋아서, 그저 비누로 문질러 씻기만 했을 뿐인데도 때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씻을 때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바를 때는 오일리하게 발렸는데, 씻을 때는 진짜 시원해서 좋았다. 멘톨을 사용하면 맛볼 수 있는 시베리아 체험 같은 화한 감각은 아니지만, 엄청 맑게 시원해서 몸도 가벼워지고 마치 천상의 공기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습력도 탁월해서 전신이 수분을 충분히 간직하면서, 피부가 물기를 머금은 채로 탄력 있게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세정력도 좋아서 손을 씻을 때 뽀독뽀독 소리가 날 정도였다. 세정력이 좋으면 피부의 수분이 잘 날아가서 보습이 아쉬울 때가 많다. 일반 합성 비누는 자주 사용할수록 손이 하얗게 일어나곤 하고, 천연 비누는 그에 비해 훨씬 순하고 보습 효과가 좋은데, 이 차 비누는 압도적이었다. 비누와 천연 비누를 모두 통틀어서 이렇게 좋은 비누는 난생 처음이었다.
거품망을 사용해 풍성하게 거품을 내보았다. 우유처럼 밀키하고 부드럽고, 조밀하고 섬세한 거품들.
샤워기로 물을 뿌리니 거품이 피부 표면으로 가볍고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서 너무 개운하고 좋았다. 차 비누라선지 고급 찻물로 귀하게 씻는 느낌이라 심신이 맑게 정화되는 것 같았다. 다 씻자 피부가 보들보들하고 매끈거리며 탱탱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펄감의 광택마저 돌았다!
머리를 감을 때도 상상 이상이었다. 밀키해서 그런지 부드럽게 머리에 잘 발렸고, 감고 나서도 청명하게 맑고 가벼워서 머리카락에 비누칠을 했었다는 감각 자체가 거의 없었다. 씻기야 씻었지만 실제로 드는 느낌은 그냥 일순간 말끔하게 비누칠이 사라지고 머리카락이 천상의 것이 된 것인양 다른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 같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자연스럽고 편하면서, 너무 개운하고 가벼웠다. 비단 머리를 감을 때만이 아니라 전신을 씻을 때도 동일하게 느꼈던 감각이었다.
다 감고 나니 머리카락이 살짝 건강하게 오일리하면서 뽀득뽀득한 상태가 되었다. 윤기가 흐르고 탄력마저 더 생겨나서 모발 건강에도 몹시 이로웠다. 심지어 자연 건조를 할 때 다른 일반 샴푸나 천연 비누를 썼을 때보다 훨씬 더 빨리 마르기까지 했다.
샤워가 끝나자 나는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상의 맑디 맑은 기운이 서렸고, 마음은 맑게 정화되어 날아갈 것 같은 상태였다. 동시에 이 새롭고 놀라운 변화는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심신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다. 지금껏 써본 비누들 중에서도 단언컨대 극상인 최고의 비누였다.
차를 비누로 만들기로 한 이래, 단 한 번도 후회나 아쉬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날마다 설레고 기대되는 순간들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실물을 영접하고 직접 사용해보니, 그전까지 했던 기대들을 훌쩍 뛰어넘어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완벽하다 못해 천상과도 같았다.
차 비누를, 자스민 넥타 비누를 처음 사용해본 이 날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중 하나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