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를 처음으로 사용했던 날 이후로 천상의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비누를 쓰면 쓸수록 차 비누에 푹 빠져들게 되면서, 씻는 행위 자체가 희락으로 변했다. 첫 비누에 이어 차례로 하나씩 쓸 때마다 처음에 느꼈던 벅찬 감동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시간이 지나고 비누를 써갈수록 더욱 여유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과 새로이 알게 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 차 비누에 한층 더 깊이 스며들게 되었다.
앞선 화에서 쓴 것처럼 이 차 비누의 스크럽 효과는 정말 완벽했는데, 특히 비누의 내구도와 맞물려 최상의 극치를 자랑했다. 윗면에 올려진 찻잎들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비누가 얇아져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위의 장식은 물론이고 이층 구조의 아랫층에 들어있는 찻잎까지도 그랬다. 쉽사리 후두둑 떨어지지 않고 비누칠을 하기 위해 손으로 문지를 때에서야 두어 개가 떨어지는 정도라면 말을 다한 게 아닐까. 개봉했을 때의 형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스크럽할 때 이따금씩 한두 개 떨어져 피부에 스치는 찻잎의 운치란 시각적으로나 사용감으로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리고 샤세에 들어있던 찻잎을 그대로 넣은 거라, 크기도 매우 다양했다. 손톱보다 더 큰 것도 있어서 스크럽 효과를 톡톡히 봤다. 비누를 비누망에 넣어 사용하면 찻잎이 비누망에 갈려서 좀 더 부드럽게 쓸 수도 있었다.
세 번째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
세 번째 비누를 사용해 샤워를 하게 되었을 때, 여전히 크기가 작아져도 무르지 않고 단단했다. 머리를 감을 때도 아주 개운했고, 몸의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맑아지는 것도 동일했다. 보습력과 세정력도 감탄이 나올만큼 같았다.
그전과 차이가 있다면 효능은 그대로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건조되어 글리세린이 더 잘 나와선지 더욱 오일리했다. 비누칠을 할 때도 전보다 더욱 동백의 실키한 느낌이 들었고, 거품도 더 조밀하고 섬세하게 잘 났다. 씻고나니 더 시원해진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나 두 번째 비누들과 달리 숙성되면서 본연의 컬러가 드러났는지 세 번째 비누부터 마치 찻잎처럼 변색된 것 같은 녹색이 살짝 올라와 보였다.
이렇게 이 차 비누를 애용하다보니 다시 차를 마시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그전만 해도 시들해져서 점점 마음에서 멀어졌던 차에 대한 애정이 다시 물씬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한구석에 치워놓았던 차를 꺼내 마셔본 날, 마치 오랜 친구를 조우하는 것 같은 반가움에 젖어들었다.
다시 차를 마시게 되었다, 다시 사랑에 빠지듯이.
비단 이뿐일까. 차를 마시면서, 동시에 욕실에서 비누로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즐기는 범위가 오히려 더욱 넓어졌다. 차를 사랑했던 마음이 돌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확장되었다.
씻으러 갈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들뜨게 되던지! 위생을 위해 씻거나 더위를 쫓기 위해 가볍게 등목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씻는다는 것 자체를 기대하고 즐기게 되었다. 피부가 보드랍고 탄력있게 변하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뿐더러, 이 모든 걸 즐겁게 향유하면서 깊은 충족감과 행복을 느꼈다. 매순간 심신이 말끔하게 정화되며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고즈넉하게 차를 음미하는 순간처럼 안정 되고, 천상에 도달한 것인양 산뜻하고 순전한 감각에 휘감겼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맑고 순수한 공기인 아이테르가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공간에 대한 인상도 변했다. 차 비누를 애용하게 되면서 그전까지 일개 장소에 불과했던 욕실이 마치 내 방처럼 친근하게 다가왔고,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는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며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야말로 '욕실 생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필요에 의해서만 오갔던 장소가 탈피하여 이제는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만족감과 행복의 영역으로 탈바꿈했다. 이 비누를 쓰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삶의 질이 통째로 달라진 것 같았다.
이 차 비누가 너무 좋은 나머지 S 공방과의 연락에 지대한 도움을 줬던 가족은 기꺼운 마음으로 후기를 썼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남기고픈 마음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새로 다이어리를 하나 장만해서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와 함께하는 매일을 조금씩 기록하며 행복을 되새겼다. 일상이 이토록 충만하고 풍요로워질 줄이야.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변화였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건조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비누는 더 단단해지고 장점들이 더 극대화되기만 했다. 앞서 이전 화에서 이 차 비누에 대해 말했던 특징들이 전부 그대로 지속되면서, 각각의 장점들이 더욱 좋아지기만 했다. 갈수록 숙성되면서 동백씨 오일의 실키한 특징도 더 선연하게 묻어났다.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의 고유한 '찻물 정도의 무게감'은 가벼워짐 없이 여전하되 동백 특유의 느낌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차 비누의 향과 색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스민 에센셜 오일과 찻잎에 있었던 자스민 향기는 함께 농축되었고, 차 본연의 녹차향도 같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자스민 넥타 녹차에 블렌딩되어있던 마오 펭 녹차의 효과일 수도 있다. 원래 이 비누물의 색은 고풍스러운 연갈색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약간의 녹색도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 가장 오랫동안 숙성된 비누답게 발현되는 진면목이 단단하고 고아한 자태에서부터 느껴진다.
비누가 도착한 지 한달이 훌쩍 넘었을 때, 마침내 마지막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를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 비누를 사용했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마지막 비누를 쓰게 되다니... 그날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가장 오랫동안 건조되고 잘 숙성되어선지, 마지막 차 비누는 앞서 사용했던 비누들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사용감을 자랑했다. 비누는 엄청 단단했고 거품도 매우 잘 났다. 얼마나 잘 건조되었는지 찻잎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차 비누는 역대급으로 가장 거품이 오일리하고 풍성하게 잘 났다.
그전에도 비누에 녹색이 보인다고 했는데, 마지막이라선지 더욱 잘 드러나서 약간 노란 끼가 감도는 녹색이 보였다. 향도 잘 응축되었고 심지어 살짝 달달하기까지 했다. 맡아보면 시원하고 청량하며 맑은 찻물의 내음은 그대로인데, 그 상태에서 살짝 달달구리한 알갱이들이 콕콕 들어있는 것 같은 달달한 향이 느껴졌다.
세정력과 보습력도 엄청났다. 이전에 이 비누를 사용할 때는 세정 후 강한 보습력이라는 확실한 단계가 느껴졌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단계가 합쳐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깔끔한 사용감이 느껴졌다. 도착일로부터 한 달 넘게 지난 것은 물론, 1000시간이나 지나서인지 정말 건조가 잘 되었고 진짜 기성제품 같았다.
마지막 비누, 고별식 전의 샤워에서.
마지막 비누, 마지막 샤워, 고별식.
마지막 차 비누가 얇아졌을 때, 고별의 샤워를 했다. 얇아졌어도 여전히 내구성이 너무 좋아서 만져보니 단단하고 쫀쫀한 탄력감이 있었다. 녹차라선지 향을 맡을 때 은은한 풀 내음도 살짝 느껴졌다. 거품도 섬세한 포말처럼 예뻤고, 특유의 밀키한 부드러움도 한결 같았다.
손으로 비누칠을 하는데, 바른 데와 바르지 않은 데의 느낌이 아예 달랐다. 얇게 피부에 펴바르니 마치 로션이나 오일처럼 기분 좋게 발렸다. 스크럽되는 찻잎도 부드럽게 까끌해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심지어 온도감조차 큰 차이가 났다. 바른 데가 훨씬 더 시원했고, 맑고 개운해서 기분이 좋았다.
비누망을 이용해서 마지막까지도 밀키한 거품이 풍성했다.
첫 비누를 사용했을 때는 시원한 물로 씻었다면, 마지막 비누의 작별은 따뜻한 물과 함께했다. 물의 온도감에 따라 씻을 때의 감상이 있었는데 둘 다 만족스럽기 그지 없었다. 시원한 물은 시원한대로 가뿐하게 날아갈 것처럼 정화되는 느낌이라면, 따뜻한 물은 정말 따끈한 찻물로 씻어내리는 것 같아 심신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것 같았다. 씻은 후의 개운함과 천상을 거니는 것 같은 황홀한 만족감은 동일했다.
이전 화에서 머리를 감을 때의 감상에서 썼던 것처럼 다 씻고나니 얼굴에 비누칠을 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피부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단, 일말의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산뜻하고 가벼웠고, 피부의 존재조차 잊을 정도로 하늘하늘한 천상의 감각이었다. 머리카락은 더욱 오일리한 탄력감이 감돌았고, 피부에 펄감의 광택도 매끈하게 감돌았다. 마지막 비누라선지 이제까지 중에서도 가장 좋았고, 너무 기성품 같으면서 말로 다 못할 정도로 최상이었다. 그렇게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천상과도 같았던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와의 작별인사.
이 비누에 흠뻑 빠지다보니, 차를 다시 즐기게 될 뿐만 아니라 차 비누 자체에 대해서도 점점 관심이 커져갔다. 이전처럼 처치곤란인 차를 변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 비누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차를 시음하면서도 이 차는 비누가 되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 자주 잠기게 되었다.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에 이어 그 다음 차 비누도 만드리라 생각하게 된 건 몹시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때부터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차로 할까, 저 차로 할까, 무엇으로 다시 주문 제작을 할지 고민하며 구상하게 되었다. 비누를 처음 제작하게 될 때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차 비누 자체를 사랑하게 되면서 푹 빠져 즐기게 되었다. 게다가 다음 비누를 만들기를 기대하는 것, 이 또한 차 비누가 내게 가져다준 기쁨 중 하나였다. 이미 행복으로 완연한 일상에 또 다른 새로운 행복의 도래를 고대하게 되다니. 천국에 다음 페이지가 있다면 아마도 이러한 느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