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다음날 바로 우체국을 통해 차를 택배로 보냈다. 보낸 차는 스미스티의 No.20 자스민 넥타였다. 어떤 차를 비누로 만드는지 1화에 아직 공개하지 않아서 읽으면서 궁금하셨을 수도 있는데, 드디어 밝히게 되었다.
스미스티의 No.20 자스민 넥타
자스민 넥타가 어떤 차인지 말하기에 앞서 스미스티가 어떤 티 브랜드인지를 먼저 소개하겠다. 스티븐 스미스 티메이커, 줄여서 스미스티는 티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티븐 스미스가 STASH, TAZO에 이어 3번째로 설립한 티 브랜드다. 창립자인 스미스는 티 시장에서 스티븐 잡스와 같은 아이콘으로 여겨질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데, 스스로를 겸손하게 티 마스터가 아닌 티메이커(teamaker)로 지칭했다. 여기에서 스티븐 스미스 티메이커라는 브랜드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스미스티는 오트 티 쿠튀르(haute tea couture)를 비전으로 한 프리미엄 티 브랜드로, 15년 넘게 직접 관리하는 다원에서 원료들을 가져오며 극소량의 차만을 생산한다. 차의 원산지, 원료, 생산일 등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서 더욱 신뢰가 갔다.
티백도 남다른데 흔한 티백이 아니라 사각형의반투명한 흰 샤세를 사용한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서 자연 분해되는 친환경적인 면모도 갖춘 최고급 샤세다. 처음 봤을 때 모양이 예쁘고 고급스러워서 마음에 쏙 들었는데, 투과성도 좋아서 실제로 차를 우릴 때도 일반 티백보다 더 잘 우려져서 좋았다.
스미스티는 차마다 고유의 넘버링을 하는데 출시 순서나 생산일과 무관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넘버는 차의 컨셉에서 유래되거나 어떤 특별한 스토리와 연관된 숫자, 또는 어떤 기념일의 날짜이기도 하는 등 특유의 유머러스한 재치가 빛나는 대목이다.
그중에서 No.20인 자스민 넥타가 바로 내가 비누로 만들기로 결정한 차였다. 봄의 첫날이 왔으니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어보라는 의미에서 넘버가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선지 들어가는 재료도 풍성하고 다채롭다. 스미스티의 녹차 라인 중에서 마오 펭 녹차와 자스민 실버 팁 녹차가 들어가고, 카다멈, 생강, 장미, 오스만투스 꽃과 함께 천연 천도복숭아 향료까지 가미됐다.
택배를 보내기 전, 직접 찍은 자스민 넥타의 고별 사진들이다. 조명 아래(좌), 자연광(우)
처음 자스민 넥타를 알게 되었을 때 너무 기대 돼서 꼭 마셔보고 싶었다. 스미스티의 여러 티 라인들 중에서도 한정판들을 모아둔 리미티드 라인에 들어가는 특별한 차라선지 카튼도 자스민 넥타만의 연보랏빛이라 예뻐서 더 눈에 들어왔다. 차의 소개문과 홍보 페이지를 봤을 때는 화사한 색감과 장미나 목서꽃, 독특하게도 천도복숭아 향이 들어간다는 점들 때문에 녹차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는데나중에야 두 종류의 녹차가 들어간다는 걸 깨닫고 더 맛이 궁금해진 차였다.
처음 차를 마셨을 때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녹차로서의 맛보다는 색다른 풍미가 느껴져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전반적으로 꽃다발을 연상케하는 풍성한 꽃향이 인상적이었다. 녹차보다 블렌딩된 향의 인상이 강해선지 가향차답게 적당히 달싹하면서 향긋했다. 원료의 풍미가 그대로 묻어나기보단 한데 어우러지며 새롭게 우러나온 맛이 감도는 차였다.
그랬던 자스민 넥타를 비누로 만들게 되다니... 차로 비누를 만드는 것 자체도 처음이라 설레거니와 그 감미롭던 꽃향을 떠올리니 어떤 비누로 완성될지 너무나도 기대 되었다.
비누는 자스민 넥타를 우려낸 찻물에 보습에 좋은 올리브 오일 등의 원료들이 들어갔다. 여기에 동백씨 오일을 특별히 추가했다. S 공방에 제작 주문을 할 때 동백씨 오일을 추가로 넣을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가능하다고 해서 함께 넣기로 했다.
차를 비누로 만들기로 생각했을 때부터 자스민 넥타를 점찍어두고 있었는데, 자스민 넥타와 어울리는 원료를 매칭해서 꼭 넣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던 중에 떠오른 것이 동백씨 오일이었다.
예전에 동백 비누를 써본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부드럽고 조밀한 거품이 나오면서 실키한 느낌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동백의 효능이 좋기로도 유명한데다, 동백 비누의 세정력도 사용해본 천연 비누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동백씨 오일을 넣는다면 실사용시 느낌이 너무 좋을 것 같았고, 결정적으로 자스민 넥타와 조합이너무 잘 어우러질 것 같았다.
택배를 보낸 다음날 S 공방으로부터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고 전해들었다. 그후로도 종종 비누 제작과 관련하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가족을 통해 연락을 받았다. S 공방이 제작 과정도 투명하게 보여주고 연락도 자주 해서, 순탄하게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8월 말에 처음으로 사진들을 받았을 때 너무 아름답고 영롱해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베이킹을 하는 게 아닐지 일순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너무 예뻤다. 특히 비누가 틀에 담겨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아직 자르기 전이라 통째로 윗면 비주얼을 볼 수 있었다. 비누 제작을 주문할 때 특별히 찻잎을 위에 장식용으로 뿌려달라고 의뢰했는데, 사진을 보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 없이 뿌려진 모습이 정말 고급스럽고 압도적인 비쥬얼이라 감탄만 나왔다.
바로 다음날 비누를 자른 사진이 도착했고 잘린 단면마저 예술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색감도 모양도 전부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건조 후에 보내준다고 해서 비누를 받아보게 될 날만을 고대하며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받을 날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그저 설레고 행복하기만 했다.
9월 초가 되었고 예상보다 이르게 택배를 받아볼 수 있었다. 주문한 비누 1kg는 총 10개로 잘라져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개봉하자 한지로 예쁘게 낱개 포장된 비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고급스럽고 예뻐서 감탄사만 연발했다.
꺼내자마자 자스민향이 방 안 가득히 퍼졌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하게 잘 나서 놀랐고 행복했다. 나중에 가족에게 부탁해 S 공방에 물어보니 자스민 에센셜 향을 추가로 넣었다고 했다. 그전에 문의하면서 비누로 만들 때 차의 향이 다 날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건 들었지만, 자스민 향을 더 넣어선지 더욱 향기가 짙게 감돌아서너무 만족스러웠다.
건조 중인 자스민 넥타 비누들
비누들은 조심스럽게 간격을 띄운 채 하나씩 세워놓고 건조시켰다. 비누는 2주 정도 건조하고 나서 추석 즈음 사용하면 될 거라고 했다. 때마침 한가위가 다가오는데 처음 사용하게 될 날이 추석이라니 너무나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전까지는 비누가 도착할 날만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정말로 완전히 건조가 끝나고 실제로 사용하게 될 날을 기다리게 되는구나 싶어서 조금 감격스럽기마저 했다.
날이 지날수록 잘 건조되면서 비누의 윤곽이 더 단단하게 잡혔다. 겉면을 감싸고 있던 한지 끝도 덩달아 빳빳하게 올라간 게 보였다. 향기는 처음 왔을 때처럼 변함 없이 진했다. 물이나 음료를 마실 때마다 마시는 것에 자스민 향이 난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우아하고 감미로운 향기에 취하며 얼른 직접 비누를 만져보며 쓰게 될 날만을 즐겁게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시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