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위인전을 가장 좋아했다. 유관순 열사가 산에서 진달래꽃을 따다 먹었다고 해서 길을 가다가 꽃이 보이면 먹어보곤 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읽고 현명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친구네 집에 가면 위인전집이 책장에 꽂혀 있었기 때문에 놀러 가면 늘 책장을 살펴보고 책을 빌려왔다. 그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맞벌이였던 아빠 엄마는 둘째 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책과 사이가 멀어졌다.
다시 그림책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받은 선물 덕분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출판사의 광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출산 소식을 듣고 같이 일하던 담당자가 유아 전집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그동안 육아 서적은 여러 권 샀지만 정작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은 살 생각도 못 했는데 그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아이와 함께 낮이건 밤이건 선물 받은 그림책을 같이 읽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잠자리 독서는 계속되고 있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는 아침, 점심, 저녁 중에 언제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봤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쉴 때는 저녁이 좋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아침이 좋고, 점심은 그 사이를 연결해 주니까 좋지도 싫지도 않고… 뭐 하나 딱 고르기가 어렵네. 너는?”이라고 되물었다. “난 저녁이 좋아!”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밤의 포근한 이불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있으면 포근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는 어쩌다가 잠자리 독서를 빠트리는 날이면 아쉬움에 울먹이곤 했는데 그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고를 때마다 늘 고민이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 삶에 대한 고민을 다룬 잔잔하면서도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을 좋아하지만 아이는 기차, 귀신, 전쟁 등의 재미있고 자극적인 사건 위주의 그림책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 방에 날려준 아이의 한마디.
“그림책은 다 좋아!”
아이가 크면 함께 읽은 책을 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다 힘들 때면 이 책을 꺼내 읽고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로 앞으로의 이야기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와 오래도록 함께 그림책을 읽는 사이가 되고 싶다.
내 글쓰기의 시작을 도와주신 곰씨네 그림책방의 선생님, 그림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