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딱지얘기를하자면 #엠마아드보게 #문학동네
‘다친 아이는 왜 아늑한 기분이 들었을까?’
‘아이들에게 상처는 무엇일까?’
‘내 상처를 잘 낫게 하는 방법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시선, 생각들이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늘 “엄마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솔직하게 말해줘”로 인터뷰가 시작된다. 아이는 거침없이 생각을 쏟아 낸다. 날 것의 솔직함에 당황스러움보다는 신기하고 부럽다고 생각했다. 책방에서 《내 딱지 얘기를 하자면》를 읽고 아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유쾌하게 잘 풀어낸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다 보면 아무리 내가 좋아도 아이에게도 그 감동이 전해지기 어려운데 오랜만에 둘 다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만나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더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이 그림책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어른들과 아이들의 생각이 참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탁구대에서 놀다가 떨어져서 생긴 상처에 집착하는 아이는 처음에 피가 난 자기 무릎을 보고 당황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보살펴주는 과정에서 사랑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상처는 아프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얼마큼 사랑하는가에 대한 애정도를 알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다.
어릴 때 꽤 많이 다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픔의 통증에 대한 기억보다는 주위의 보살핌을 받았던 것이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수두에 걸렸을 때 상처를 피해 아프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목욕시켜 주었던 엄마, 다리에 깁스를 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주었던 아빠, 손가락 골절 때문에 숙제를 대신해 준 언니, 임신 중에 잦은 출혈로 한 달 동안 입원해 있을 때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면서 간호해 주었던 남편, 감기에 걸려 기침으로 고생할 때 얼른 물을 마시라며 컵을 내 입에 들이대는 아이. 이런 애정 어린 보살핌이 상처를 하나의 추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런 보살핌이 참 좋다. 혼자 책 보고, 혼자 걷고, 혼자 음악 듣고, 혼자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역시 마음이 힘들고 몸이 지쳤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식어 있는 몸과 마음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넘어지거나 다치면 반사적으로 “괜찮아?”가 먼저 나온다. 아이가 속상해서 울면 “아이고, 너무 속상하겠다.”라며 토닥여준다.
어느 날 아이가 학원 수업을 마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징검다리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마침 운동을 마치고 놀이터를 지나가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달려가서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가슴으로 떨어졌는지 숨쉬기 힘들다며 얼른 인공호흡을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말했다. 하지만 인공호흡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가 생전 처음 겪어본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놀이터 바닥에 앉아 아이를 계속 토닥여주었다.
10분이 지났을까? 아이는 진정되었는지 울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아이가 아파할 동안 계속 아이의 고통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이 그쳤을 때 같이 벤치에 앉아 구석구석 몸을 살폈다.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떨어졌는지 상황을 들었다. 예상대로 징검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나무다리에 가슴을 부딪쳤다고 했다. 그곳은 급소라 큰 충격을 받으면 정말 아픈 곳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는 왜 자신에게 인공호흡을 하지 않았냐며 나를 탓한다. 너는 숨을 잘 쉬고 있었다고 말하자 아이가 웃는다. 웃을 만큼 여유가 있다는 건 괜찮다는 신호다.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며 저녁 메뉴에 관해 이야기했다.
누구나 상처를 받으면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한다. 이영림 작가의 그림책 《내 걱정은 하지 마》를 읽고 눈물이 핑 돌았던 적이 있다. 아픈 엄마를 보살피는 아이의 정성이 어떤 마음일지 느껴졌다. 스스로 상처를 보살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부끄러워하고 감추기보다는 상처를 건드리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처는 주변으로부터 어떻게 보살핌을 받았느냐에 따라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새살이 돋아날 수도 있다. 한번 생긴 상처는 없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덕분에 몸과 마음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살기보다는 제때 치료하면서 상처를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 딱지 얘기를 하자면》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자기 무릎에서 딱지가 떨어져 나간 것을 알고 울다가 딱지 자국이 오래오래 남아 있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좋네요.”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상처는 사랑의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