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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필요해

#나무 #바두르오스카르손 #진선아이

by 수키
‘밥은 나무 너머에 갔을까?’
‘힐버트는 왜 같이 가지 않았을까?’
‘나에게 조력자는 누구인가?’


나무 뒤의 세계가 궁금한 밥은 친구 힐버트에게 그곳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힐버트는 나무 너머로 가봤다며 다양한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밥은 함께 가자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힐버트가 함께 가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결국 밥이 나무 너머에 갔을지 안 갔을지 그림책에서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앞의 면지와 뒤의 면지에서 나무의 위치가 바뀐 것을 보고 갔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그냥 그 앞을 지나쳐 갔을 뿐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나는 그림책에서 보여 준 밥의 모습을 봤을 때 결국 가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나였다면 힐버트가 함께 가주지 않았더라도 혼자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낯선 것에 대해 처음 경험할 때는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 곁에서 도와준다면 든든하지 않을까?


‘내 삶에 조력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누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 지내는 남편을 조력자라고 하고 싶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 나와 완전히 다른 성향을 보이는 남편은 호기심이란 쓸데없는 생각에 불과하고 오로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관심이 가는 것에 대해 무엇이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고 종종 끓어오르는 열정이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성격은 또 다른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는 무엇을 하든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결과가 확실하다. 그러므로 결과가 없는 무모한 일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 일단 하고 보는 성격인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지금 내가 당장 궁금하면 해봐야 직성이 풀리지만 의욕만큼 결과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만남, 새로운 장소가 나를 설레게 했었다. 하지만 점점 변했다. 해야 할 이유보다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게 되고 도전보다는 계획을 하게 되었다. 새로움보다는 안정적인 것이 편해졌고, 안되는 것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게 되었다(남편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조력자가 있다. 이제 아홉 살이 된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든든하게 날 응원해 준다.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조력자이다.

아이와 함께 《나무》를 읽었다.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밥이 그대로 집에 갔다는 이야기에 몹시 안타까워했다. 힐버트는 딱 봐도 거짓말쟁이인데 왜 그런 친구의 말을 듣고 가지 않은 것이냐고 했다.


“만약에 힐버트가 밥과 함께 가준다고 했으면 밥은 어떻게 했을까?”

“나무 너머까지 갈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이는 힐버트를 미워했지만, 이 책을 무척 재미있어했다(도서관에 있는 이 작가의 다른 책도 모두 빌려 봤다). 만약에 아이에게 정말로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 보았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겠지만 내 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조력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도 아이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하는 힘도 필요하지만, 무엇이든 다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고시원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백수였던 나는 시간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 혼자 놀러 다녔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내가 원해서 간 유학이었지만 가까이 기댈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에 매일매일을 긴장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유학 생활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종종 언니가 한국 음식을 보내주고 국제 전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날이면 외로웠던 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남편은 아쉽게도 언제나 좋은 조력자는 아니지만 나와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좋은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아이는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힘든 현실을 잊고 꿈을 꾸게 해주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조력자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혼자 살아갈 힘이 없을 때 나를 이끌어 주는 조력자가 주변에 있다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이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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