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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

#구덩이 #다니카와슌타로 #와다마코토 #북뱅크

by 수키
‘히로는 왜 끝까지 혼자 구덩이를 팠을까?’
‘히로는 왜 구덩이를 다시 메웠을까?’
‘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선택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잘 살기 위해 애쓴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40대가 되면서 알게 되었다.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스티븐 D. 헤일스의 《이것이 철학이다》에서 자유에 대해 말 한 인상 깊은 문구가 있었다.


“자유의지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손의 가려움처럼, 뇌가 우리에게 투영하는 끈질기고 골치 아픈 환각일 수도 있다.”


자유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일까?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좇던 자유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것을 그동안 바란 건가?


나는 책을 좋아한다.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릴 적 우리 집엔 책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네 집에 가면 그 집에 있는 책을 읽고, 더 읽고 싶어서 빌려왔다. 어렴풋이 아빠가 “공부하는 자식한테 투자할 거야”하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학교보다는 밭일을 도와야 했다. 엄마는 지금도 한글 읽는 걸 어려워한다. 성인이 되어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왜 초등학교 졸업을 못 했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못 가게 했지.”

“왜?”

“여자가 무슨 학교를 가냐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

“가고 싶었지. 나는 공부하고 싶었어.”


아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큰아버지까지는 학교 교육을 모두 받았지만, 넷째와 다섯째인 우리 아빠와 삼촌은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그래서 종종 나의 어릴 적 기억 속에서 부모님은 ‘못 배운 한’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부모님의 ‘한’ 덕분에 배우는 것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읽고 배우는 건 확실히 내가 크면서 느꼈던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장난감이나 과자, 옷을 사는 것에는 돈을 아꼈던 부모님은 책을 산다고 하면 바로 지갑을 열었다. 혼자 서울에서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공부하던 시절에도 서점에 갔다가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그러면 아빠는 바로 입금해 주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라고 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계속 배우라고 했다.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도 나는 책을 좋아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선택으로 만든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 아빠가 말한 ‘자식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만 은밀하게 한 말이 아닌 모두가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수없이 했던 말이다. 네 명의 자식이 모두 같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책 읽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건 나 밖에 없다. 만약에 아빠가 “공부를 잘하려면 책을 읽어야 해! 배워서 남 주냐,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던가, “백날 책 산다고 뭐가 되냐?”라고 말했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했을지 의문이다. 히로가 심심해서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 것처럼 나도 심심해서 책을 읽었다.


히로가 구덩이를 파고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그 하늘이 더 높고 파랗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책을 읽고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동생이 말한 연못이나 친구가 말한 함정은 되지 않았지만 히로의 구덩이는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직접 만든 삽 자국, 구덩이를 파면서 만났던 지렁이, 안에서 보았던 하늘은 직접 구덩이를 파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경험들이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성공한 어른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배운 만큼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내 삶의 목적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내 삶의 선택은 내 목적으로 결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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