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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을 거라는 착각

#나와다른너에게 #티모테르벨 #책읽는곰

by 수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을까?’
‘산토끼는 왜 새 친구를 따라갔을까?’
‘같다는 건 무엇일까?’


아이를 낳았다. 나와 남편의 유전자가 합쳐진 존재. 전체적인 모습은 남편을 닮았지만, 활짝 웃는 모습이 나를 닮아 얼굴을 볼 때마다 같이 따라 웃게 된다. 가족들은 내가 결혼한다는 것에도 놀라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모습에 더 놀란다. 자기밖에 모르던 계집애가 아이를 키우는 게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회사에 다녔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육아와 일을 집에서 병행한다는 것은 무척 외롭고 힘들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말은 없고, 울기만 하고, 싸기만 했다. 좀 걷기 시작하니 집 근처 놀이터란 놀이터는 다 가서 놀아야 겨우 집으로 들어간다. 다섯 살 쯤에는 ‘왜?’라는 말밖에 모른다는 듯 세상을 향해 질문을 쏟아 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면 남편이 “이건 지 엄마를 똑 닮았네.”라고 말하고, 아이가 친구와 다투고 난 후, 속상한 마음을 숨길 때면 “아빠 닮아서 말이 없나?”라고 말하곤 했다. 어찌 됐든 나와 남편의 아이이니 우리를 닮아서 그렇겠지 생각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난 쟤 눈빛만 봐도 뭘 하려는 지 알 것 같아!”라고 말하며 자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할수록 도무지 아이의 속을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 만남은 즐거워하지만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다. 아이가 어릴 적 놀이터에 나가면 친구와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를 보고 나를 닮아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에 집중할 수 있게 했고,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 함께 놀았다. 아이는 가끔 친구들과 놀기는 했지만, 대체로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핸드폰이 생긴 것을 보고 자기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맨날 엄마랑 다니는데, 핸드폰이 왜 필요해?”

“나도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싶어.”


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할아버지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소원을 빌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집에 있던 공기계를 개통해 주었다. 신이 난 아이는 주말이면 친구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같이 놀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 번은 친구 생일파티에 다녀오더니 생일 파티를 해달라고 했다. 극 내향인인 내가 파티를 준비한다고? 고민이 많이 됐다. 마음먹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기에 초대하게 되면 친구들의 엄마도 불러야 하는데 그 준비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엄마는 생일은 가족끼리 축하하면서 보냈으면 좋겠어. 네 생일은 여름방학이라 휴가 기간이기도 하고… 가족끼리 보내자.”라며 설득했다.

아이와 다니카와 슌타로의 《나》라는 그림책을 읽던 밤이었다. 재미있다고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두 번째 읽을 때는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자고 했다. 아이는 페이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넣으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


원래 이 부분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순간 놀랐다. 아이는 친구들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때마다 아직 아이니까, 모든 아이가 대부분 그런 성향을 보이고 있으니 그런가 하며 넘겼었는데 “주인공!”이라고 외치는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환하게 빛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2학년이 되기 전의 방학이니만큼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아동 평론가 김지은 선생님이 작업에 참여한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이 출간되었고, 책에 나온 도서들을 방학 동안 읽어보기로 계획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티모테 르 벨의 《나와 다른 너에게》를 읽게 되었다. 표지에서 표현된 정교한 토끼 그림에도 감탄하지만, 내지의 그림도 예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 보다가 소장하고 싶어서 따로 구매하게 되었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다가 굴토끼들과 함께 지내던 산토끼 한 마리가 어느 날 다른 산토끼를 만나 숲으로 들어갈 때 큰일 나겠다며 함께 긴장했다. 산토끼는 굶주린 늑대들에게 습격당 할 뻔했지만, 굴토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그리고 산토끼와 굴토끼는 각자의 방식대로 밤을 보낸다. 토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남편과 나는 왜 아이가 우리를 닮았을 거라고 섣불리 생각했을까. 우리는 굴토끼와 산토끼처럼 비슷해 보여도 다른 존재였다. 아이는 속상할 때면 “엄마는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라며 울먹인다. 그러면 나는 “내 배에서 나왔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 같지 않아?”라고 되받아친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늘 초조했다. 함께 어울리면 더 즐거울 텐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친구들이 자신의 놀이는 재미없다고 말할 때, 그런 말들이 서러워서 내 품에 안겨 울 때마다 마냥 고집을 피우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왜 노는 거야?”

“심심하니까.”

“그런데 왜 싸우는 거야?”

“내가 하자는 데 다 싫다고 하잖아.”

“네가 하고 싶은 걸 친구들이 무조건 해야 해?”

“…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지금 내가 얼마나 속상한데!”


아이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아팠다.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얘기한 게 아닌데. 다시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아이가 내 품에서 울면서 내뱉는 말을 잠자코 들어주었다. 아이의 말은 이랬다. 나는 친구들이 하자는 거 다 했는데 친구들은 내가 하자는 건 시시하고 재미없다고 했다고. 친구들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이 아이의 속마음이었다. 아이에게 친구들은 그 놀이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뿐이지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매번 친구들이 놀 때마다 너를 찾는 거라고 다독여주니 마음이 풀어진 듯 “정말?”이라며 서서히 울음을 그쳤다.


나와 아이의 사이도 다름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아이는 오죽할까 싶었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중인 만큼 타인의 존재도 그만큼 알아가야 한다. 이 세상은 주인공만 있는 게 아니다. 모두 비슷해 보여도 굴토끼도 있고 산토끼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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