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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Jul 18. 2024

아프다는 핑계

바야흐로 장마의 날이 다가왔다. 장마가 시작되면 기분이 침잠되고 편두통은 시작되며 공황이 올 것 같은 느낌이 지속된다. 나는 왜 이렇게 잔병치레에 둘러싸여 사는가. 이런 자책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결국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살지?

어제는 운동을 하다가 공황이 오기 직전의 상태가 계속됐다. 토할것 같고 몸의 신경이 예민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느낌에 연신 물을 들이킬 뿐이었다. 상비약을 챙겨두긴 했지만 그래도 불쾌했다. 이 상태로 집에 가면 또 나 자신에게 지는 느낌이었다. 운동은 장기전이야, 다이어트도 장기전이야, 한번쯤은 쉬어도 돼, 라는 말은 메아리처럼 울릴 뿐, 실행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아프다는 핑계로 뭔가를 그만둘거야? 일이든 운동이든 뭐든간에. 스스로를 질책했다. 너무 나한테 모진가, 라는 생각은 잠시. 발작만 안오면 되잖아. 라는 생각으로 유산소까지 끝마치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자기전에 약을 삼키며 생각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가.


운동도 다이어트도 장기전이고 오래오래 꾸준히 하려면 내 몸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을 알고있다. 짝꿍도 나를 배려해서 유산소 하지 말고 집에 가자했지만 나는 또 아프다는 핑계로 뭔가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유산소까지 하고 집에 와서 아무렇지 않은듯 강아지를 만지고, 강아지 밥을 챙겨주고, 밥을 먹었다.


아프다는 것은 사실 핑계가 아니다. 타인에게는 적용되는 말이다. 뭐든간에 오래 꾸준히 하려면 중간중간 쉬어줘야 해, 본인에게 너그러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할수도 있는걸.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거야. 왜 이 말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을까?


아마 내 내면의 소리인가보다. 너는 더 정진해야 해, 너는 더 살을 빼야 해, 너는 더 건강해져야 해, 운동을 더 해야만 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뭔갈 포기하지 마"


모진 걸 알고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의 발끝도 못따라갈 것 같은걸 어쩌나. 날 위해 하는 행동보다 남들과 비교하는 삶과 더 속도를 내야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누른다.


날카로운 내면의 소리가 날 괴롭힌다. 늘 그래왔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그런것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뭔갈 하고있다. 쫓기고 있다. 나를 돌보지 않고 있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느긋하고, 여유롭고, 그치만 꾸준히 뭔갈 하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나는 꾹 닫힌 창틀 안에서만 살고 있었다.


이전에 직장에서 잘렸을 때, 들었던 이유가 자주 아프다는 것였다. 편두통 발작으로 내내 고생하던 때가 있었다. 빛번짐이 심해지고 시야가 흐릿해지면 구역질을 하고, 결국 토를 하는데 두통과 어지러움에 휘청휘청 걷다보면 직장 동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팀장님은 좋게 보지 않았다. 어떻게 일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고. 일을 시키면 또 아플까 무섭다고. 나중에 어디선가 만나면 그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그게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어딜 가든 아프다는 핑계를 대지 말자고. 운동도, 일도, 대인관계도. 아프다는 핑계로 중도에 그만두지 말자고.


내 귀 양쪽에서 들려온 수많은 말, 말, 말들. 또 아파? 그럼 일을 시킬수가 없잖아. 민폐잖아.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사회도 잘 굴러가고, 회사도 너무 잘 돌아가는데, 내가 이 사회에서 빠지면 되지 않을까?


날 해치지 않게 도와달라고 하고싶은데 어디에 도와달라고 해야 할까. 119에라도 신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이 힘들어요, 아파요, 살려주세요.


난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았어, 라는 자격지심.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싶어 시작한 구직, 실패, 또 실패, 수많은 불합격. 마침내 좋은 대표님을 만나 지금은 아프면 쉬고, 쉬고싶을 때 미리 말해두면 휴무를 뺄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행운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나를 채찍질 하고 있다. 채찍질의 흉터는 짙게 남아 계속 등이 따갑고 가려워진다.


혼란스럽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관용적인 마음을 품으면 안될까, 자꾸 되뇌이는 말이지만 쉽지않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용적이었다간 나태해지고, 나태해지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생각에.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해결책을 알려주면 좋겠다. 오늘의 글도 사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고 싶어서 태블릿 앞에 앉았을 뿐이다. 어제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돈 아프다는 핑계, 아프다는 핑계, 라는 말을 어디에든 풀어내고 싶었다. 누구에게 보여져도 괜찮은 글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이 각박한 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느긋하게 천천히 풀어줄 수 있을까...... 답은 나도 모른다. 모든 일에 명쾌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이번에도 흐린눈 하고 넘어가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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