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걷고 뛰기 위해 수없이도 넘어지고, 일어난다. 아프면 울기도 하고, 툭툭 털어내기도 한다. 생채기가 나면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보호자들은 괜찮다고 다독이거나 도와주거나 안아주면서 아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걷고 다시 뛸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분명 어린아이였던 적이 있고, 넘어졌다 일어나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그것은 인간 모두가 배운다. 몸이 넘어지면 몸을 일으키고, 앞으로 걷는 법.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배우게 되는 몸의 기억이다. 어렸던 아이는 도움을 받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했겠지. 그런데 다 큰 나는, 그게 되지 않는다.
몸이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면 그만이었다. 발목을 삐면,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아 한동안 쉬면서 회복한다. 무릎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고 소독을 한다. 밴드를 붙이고 상처관리를 했다. 심지어 골절이 생겨도 두어 달 쉬고 나면 뼈가 붙곤 했다.
몸이 다치는 것은 많이 아프지만 그것을 겪어내고 나면 또 금방 괜찮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마음이 넘어졌을 때는, 한없이 어두운 깊은 계단 속을 계속해서 굴러 떨어지는 것일까. 나는 단지 마음속에서 잠시 길을 잃고 요철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곳은 평지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도 않는 내리막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이 추락했다거나, 좌절했다거나, 절망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단지 넘어졌다고 표현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니까. 나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사는 것이 서툰 나는 자주 넘어진다. 실제로 몸이 넘어지기도 하고, 마음은 수없이도 넘어진다. 자주 넘어지는 나는, 내 '넘어지는 삶'에 대해 기록하기로 했다. 언제 넘어졌는지, 언제 일어났는지, 어떻게 굴러 떨어졌는지. 마음의 어느 부분을 부딪혀 다쳤는지. 그리고 누구의 토닥거림을 받았는지, 때로는 내가 나의 가슴을 흠뻑 끌어안기도 했던 기억들을 되살리며, 어떻게 살아갈지 더듬더듬 감을 잡아보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꽤 유쾌하지 않은 내용들이 이어질 것이다. 자랑스럽거나, 기쁘거나, 행복한 일들만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빛나는 순간들은 있었다. 반짝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함께라는 용기로 살아갈 수 있었던 윤슬 같은 볕들이 있었다.
수많은 눈물 속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과, 나의 마음들, 매 순간들을, 그리고 넘어진 나 자신마저도, 미운 모습마저도. 그려내고, 써 내려가기로 했다.
비극적인 사실은, 그리고 납득하기 어렵지만, 조금 기쁜 사실은, 삶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엉엉 울며 살아가든, 하하 웃으며 살아가든. 어쨌거나 사람들은 모두 '살아지고'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지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완결 낸 다음에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차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승은, 글을 쓸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마무리를 맺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나는 지금 섣불리 마무리를 맺을 수 없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계획했던 목차를 하나하나 연재하다 보면, 그리고 누군가 읽고, 공감해 준다면, 또 누가 넘어진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 있다면, 나는 알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넘어진 마음을 어떻게 일으켜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