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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Sep 19. 2024

처음 느낀 이상한 감정들

나는 매일 우는 아이였다. 아이에게 닥쳐오는 불안과 우울감이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고 눈물로 표현된 것이라고 짐작한다. 밤이 되면 자꾸 울었다. 밥상머리 앞에서 운다고 혼난 적도 많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어느 날은 어둡고 추운 베란다에 가두고 눈물을 그치면 꺼내준다고 했다. 나는 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울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어른이 되어 그때 생각이 나면 왜인지 가슴 한 구석이 찌르듯이 아파왔다. 트라우마라는 이름의 상처였다. 마음의 외상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렸던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정확한 의사표현도, 감정표현도 하기 어려운 나이, 6살, 7살. 그때의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나았을까. 이 생각으로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사실 그때 할 수 있었던 적절한 행동이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우는 것뿐. 울음을 참아야 할 뿐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의 기억이 나면 가슴 한 구석이 찌릿찌릿 아팠는데, 그걸 극복하려면 난 무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가슴 찌릿한 기억 말고도, 나는 매일 가슴에 뭔가 얹힌듯한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어느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어느 날은 머리가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차오르는 분노에 가슴이 아프곤 했다.


성인이 되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대학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나는 도무지 이 답답함과 숨 막히는 기분 때문에 공부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아무 정신과에 전화해 진료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고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의사였다. 화가 주체가 되지 않고 분노가 차오른다, 속이 답답해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내가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던 순간이었다. 진료 전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고, 의사 선생님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약물과 불안, 우울을 조절할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해 준다고 하셨다. 화를 내는 악마를 무찌르고 천사가 될 수 있게 도와줄게요~ 하던 선생님이셨다. 약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진단은 우울증이었다.


10년 전, 지하철을 타던 어느 날에. 사람들이 가득 찬 칸 안에 나는 간신히 끼여있었다. 숨이 막히고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때의 시야는 어둡거나 흐리거나 불분명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하더니 숨이 멈출 것 같은 괴로움에 숨을 꾹 참았다가, 연신 내뱉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식해서 숨을 쉬고 있었고, 이 숨이 언제 멈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토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가슴을 치면서 숨통을 트이게 했고,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에 들어가 1시간 동안 나오지 못했다. 이것이 이상한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아픈 증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바로 병원에 찾아갔고 그렇게 공황장애를 진단받게 되었다.


 2017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툭하면 소리 지르던 임원진, 직원에게 욕을 하던 대표님 때문에 회사생활은 괴로웠고, 고객을 상담하는 일은 나에게 너무 고된 일이었다. 매일 전화를 수십 통을 하고, 대표님한테 혼나고, 대표실에서 들리는 고함과 비속어를 들어야 했다. 이상한 회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다들 이런 사회생활을 하나보다, 다들 이런 식으로 일하고 돈을 버나보다 싶었다. 겨우 들어간 나름 큰 회사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2018년, 나는 자살시도를 했다. 회사생활을 1년 좀 못 채운 날이었다. 연휴가 길고 연차를 써서 회사를 나가지 않는 동안에,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으면 자살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전에 수도 없이 자살시도를 했지만 두려움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 느낀 이상한 감정들은 폭풍처럼 나를 휘감았다. 죽을 것 같았다. 가위에 눌리거나 꿈을 꾸면 누가 내 목을 조르고 놔주지 않았다. 무서웠다. 애를 쓰며 견뎠다.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숨이 막히는 기분, 화를 주체할 수 없음, 가슴 답답함,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바로 병원에 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의 목차들은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무서운 삶, 고통스러운 삶을 내가 어떻게 견뎠을까. 그 지난한 과정들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내었을까.


힌트를 주자면 함께라는 용기였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들은 나를 순간순간 살게 만들었다. 우리 죽지 말고 오늘만 살자는 친구의 말이 하루를 버티는 힘이었다. 밥 먹을 돈이 없을 때 아무 말 없이 내 계좌로 20만 원을 보내주던 친구와, 내 병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나를 안아준 나의 친구들, 가족들 덕에 내가 지금 살아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었던, 삶을 포기하려던 마음들. 그 마음을 거둬내게 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괴로운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내가 포기하지 않은 삶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지켜봐 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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