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과서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학업에 대한 내 첫 기억은 그것이었다. 빨간색으로 그어진 내 책 한 페이지를 펴고, 선생님께서 반 모두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교과서를 줍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문제를 풀어야 했지만, 어떻게 푸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나는 소아우울증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공부는 하는법을 몰랐고, 선생님의 수업이 귀에 들어와 본 적이 없다.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우리집 아파트는 13층이었고 나는 자주 의자를 밟고 올라가 위험하게 창문앞에 서서 떨어질까 말까를 고민했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혀 있다.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학교에서 그건 곧 쓸모없는 아이를 뜻했다.
중학생때도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때도 마찬가지였다. 숙제는 해갔지만 매번 다 틀리거나, 몇 개 이상 틀리면 맞아야 했는데 늘 맞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를 못한다고 문제를 틀렸다고 맞는것이 부당했지만 그때는 별 수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때는 난데없이 운동권이 되어 학교에 전단지같은것을 만들어 붙이고 선생님께 혼나곤 했다. 공부에 집중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수능을 당연히 못봤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 했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가 전문대라도 가길 바랐고 2년제 학교에 원서를 써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학과는 사회복지과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교단에 선 사람의 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학에 가면 공부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아무 압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가만히 듣고있자니 사회복지라는 내 첫 전공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법을 몰라 시험범위를 통째로 외웠다. 토시하나 안틀리고 외우니 시험문제에 대한 답변도 술술 나왔다. 처음으로 시험에서 전 과목 A라는 스코어를 받았다.
공부를 하다보니 요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에 밑줄을 쳐야 하는지도 교수님이 알려주었다. 그럼 그걸 따라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외우면 되었다. 글이 이해가 되면 외우는것도 어렵지 않았다. 공부가 재미있었다고 느꼈다. 공책에 요점을 정리하고 메모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었다. 전문대에 있었던 2년간 나는 공부하는법을 스스로 익혔다.
좋은 성적으로 2학년때 학교를 졸업했다. 학점도 높았고 더 공부를 이어가고 싶어서 4년제 학교로 편입을 했다. 원서 쓴 모든 학교에 합격했다. 내가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타지에 가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정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공부는 할수가 없었다. 몸이 이곳저곳 자주 아팠다. 공부가 재미있다는 마음은 이제 끝난걸까? 하지만 나는 그때 내 전공이 맘에 들었다.
내가 3학년때 선택한 전공은 심리학이었다. 내 맘을 이끈 공부였고, 사회복지과에서도 정신건강론을 제일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자취를 시작하니 점점 성적이 떨어지고 수업에 지각하고 못가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그 지역의 가까운 정신과에 방문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라고 했다. 무기력이 심하니 약을 주겠다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것은 공황장애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공부가 될리가 없었다. 3학년때 학점은 4.5점 만점에 2점대로 마무리 되었다.
3학년때 자취를 마치고 집에서 왕복 4시간 거리를 통학하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성적을 회복했다. 그래도 2점의 벽은 높았다. 겨우 3을 만들고 졸업을 했던 것 같다.
이 성적을 받아주는 대학원이 별로 없었다. 심기일전으로 대학원을 재수해서 들어간 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날개돋힌 듯 공부를 했다. 교수님께서 하는 말을 받아적고, 관련 내용에 밑줄을 긋고, 집에 와서 그것을 복습했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었다. 어떤 날 내 몸에 해를 입히기도 하고, 죽으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번번히 후회만 남았다. 약은 계속 복용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도 받았지만 별 차도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공부가 좋다는 이유로 계속계속 공부를 하고 논문을 썼다.
결국 세상에 논문이 태어나고, 나는 꽤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연구 실적은 별로였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계속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다. 일상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죽을까 말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뭘까 왜 살고있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나는 35살까지 살아있다. 약으로 증상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잠을 자고, 밥을 먹거나, 못먹고, 뭐라도 챙겨먹으려 노력하고, 방을 치우려고 해보고,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러면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단지 몇페이지에 쓸 수 없는 그런 노력들.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치면서 했던 공부들. 그것이 쌓여서 나를 만들었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는 내 사회생활 이야기를 쓸 것이다. 공부는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됐는데, 공부랑 사회생활은 또 달랐다. 나는 늘 내가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사실 별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있다.
다음은 사회 부적응자의 사회생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