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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Oct 17. 2024

일상 속 작은 전쟁들

누구나 각자의 전쟁을 치루며 산다고 했던가.

무기력할 때는 모든것이 투쟁이고 전쟁이다. 양치하는 것, 샤워하는 것, 머리감는 것. 밥을 챙겨먹는 것, 환기를 시키는 것,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 침대 속으로 몸이 꺼지고 나는 영영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남는 시간에 글을 쓰거나 뭔가를 읽는것을 좋아하지만 그조차 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중력이 나에게 향한다. 그럼 거대한 공이 내 몸을 짓누른다. 일어날수도, 일으킬수도 없는 몸이 침대 밑으로, 땅끝으로 내려간다.


그럼에도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 적어도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해야 한다. 그럼 나는 땅끝에 있는 나의 몸을 일으켜야만 한다. 죽을만큼 괴롭다. 어떻게 할 수 있지? 부터 고민한다. 마음의 준비만 몇시간이 걸린다. 세수하러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천만리다. 밥도 먹고 약도 먹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까마득한 이야기가 된다.


무기력이란 이런 것이다. 정말 모든 일상이 전쟁인.


조증이 오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자꾸만 밖을 나가려 하고, 잠을 적게 자고, 커피를 먹고 무리해서 일정을 소화하고, 돈을 쓴다. 그 모든걸 참아내야만 한다.


불면이 시작되면 나는 계속해서 유투브, 릴스, 숏츠 탐방을 한다. 폰을 떨어트려놔야 잘 수 있다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불안이 내 머리로 침투한다. 그걸 피하려고 폰을 붙들고 있다.


불안과 싸우는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우울과 싸우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조증 기간을 견디는건 아예 절대 못하겠다. 책이 읽히지 않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기간에는 글자 하나를 단어 하나를 적는것 조차 힘들다.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 모든것이 나에게는 마음속 전쟁이다.


대인관계는 또 어떤가. 가끔은 모든 사람들을 피해 동굴로 숨고싶다. 어떤 날은 갑자기 바 같은델 놀러가서 사람들과 아는 체 하고 술을 먹고싶고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싶다. 그러다 사람이 모두 싫어지는 기간이 오기도 하고, 사람이 너무 좋아 계속 만나고싶은 기간이 오기도 한다.


이 일상속 전쟁들에 부딪히기 전, 나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갑옷을 입는다. 이 갑옷은 너무 불편하다. 걸을 때도 불편하고, 철컹철컹 소리가 나고, 관절을 굽히기도 어렵고, 발을 디딜때마다 쿵 쿵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리기도 힘들고,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뚫린 구멍으로 앞만 보인다. 주변을 살필 수 없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나는 늘, 불안이 어지럽힌 내 머릿속을 감당해야 하고. 우울이 잔뜩 헤집어놓은 가슴을 부여잡아야 한다. 잠을 자기 전에도, 글을 읽기 전에도, 세수를 하기 전에도. 모든 우울과 불안이 가슴과 머릿속을 침투해서 나를 괴롭힌다.


이 모든 전쟁들을 치루기에 나는 갑옷을 입었지만, 사실 거추장스러운 것 같다. 일상을 사는데 있어서 갑옷까지는 필요 없는데, 가벼운 옷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늘 갑옷을 두르고 살고 있다.


어느날 갑옷을 확 벗어던지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 일상의 바람, 내리쬐는 햇빛, 보랏빛 새벽을 내 모든 시야로 보고, 온몸을 숲에 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요즘은 갑옷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관절을 조금씩 돌려보고,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보고, 귀로 음악을 들어보다보면, 바람이 느껴진다.


갑옷을 어느날 갑자기 벗어던지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마음 속 갑옷을 점차 얇게 만드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다. 일상은 여전히 전투지만, 난 여전히 갑옷을 입고 있지만, 나를 찌르는 적들의 창들이, 칼들이, 점점 뭉툭해지고 짧아짐을 느낀다.


내가 언젠가 꽃을 피우리라 믿는 나의 친구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내가 날개를 펼치는 그 날을 기다리는 나의 짝꿍 덕분에, 또 갑옷이 다시 얇아진다.


나는 내가 좁고 예쁜 골목길을 얇은 옷으로 걸어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골목골목 핀 꽃들, 골목 사이로 부는 사잇바람, 돌담 벽, 에 가려진 그늘, 햇빛. 언젠가는 누렸던 것이었을텐데, 아주 어렸을 적에는 엄마 등에 업혀 그 모든걸 느꼈을텐데.


아마 괜찮을거야.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 봄 밤에 갈대숲을 손끝으로 만지며 걷는 상상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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