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스레덴 야생일기
흐리멍덩한 눈으로 저녁을 때우던 흔한 날이었다. 산에 미쳐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산행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퍽퍽한 평일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지우개 같은 닭가슴살을 씹으며 구글맵을 이리저리 확대했다. 어디 재미있는 산 없나? 소보로빵처럼 산맥이 거칠고 울퉁불퉁할수록 내 시선을 사로잡기 쉽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국가가 있었는데 이름만 겨우 알고 있던 노르웨이와 스웨덴이었다. 뭐야 이 곰보빵들. 당장 무슨 산인지 알아보자.
“노르웨이 하이킹”, “스웨덴 하이킹” …
직관적인 검색키워드에 걸맞은 하이킹 코스가 보란 듯이 쏟아졌다. 그중 마음에 꽂힌 키워드. ‘유럽의 마지막 야생’ 460km의 쿵스레덴. 야생? 투박하고 너저분할 것 같은 단어에 왜인지 내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가보고 싶다. 더 할 설명 없이 전부였다. 나는 야생이라는 단어에 꽂혀 관심도 없던 스웨덴 땅덩어리에 닿고 싶었다. 그리고 460km라는 감도 안 잡히는 그 거리를 두 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막연히 꿈꾸던 내일을 모르는 삶, 그런 내게 쿵스레덴은 너무나 좋은 미지의 땅이었다.
당시 나는 한라산을 헐떡이며 겨우 오르는 등린이었지만 현실적인 능력 따위는 상관없었다. 순식간에 박혀버린 꿈을 뽑아낼 방법은 없었고 그렇게 나는 상상 속 야생에서 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야생. 왠지 가시가 돋아있을 것 같은 삐죽한 단어에 사실은 몇 번이나 움찔했는지 모른다. 그 거친 곳에 던져질 나를 보호하고 책임질 사람이 연약한 나뿐이라는 사실은 또 얼마나 겁이 났나 모르겠다. 상상이 겁을 주기 시작하면, 나는 겁을 쫓아내기 위한 근거로 열심히 정보를 찾아 나섰다.
모은 정보는 고작 이게 전부였지만.
1. 전 구간 하이킹은 평균 30일 정도 소요된다.
2. 대부분의 구간에서 통신이 되지 않는다.
3. 식량과 숙소가 없는 구간을 4-5일 지나야 한다.
4. 곰을 만날 수 있다.
5. 악명 높은 모기떼를 대비하라.
6. 봐도 모르겠는 gpx 다발
음, 찾을수록 더욱 겁이 나는군.
두려움에 장악당하기 전에 티켓이나 끊기로 결심한다. 나는 그렇게 어느 술자리에서 알딸딸한 정신으로 가장 저렴한 북유럽행 티켓을 끊었다. 안정적이던 삶의 막에 실금을 긋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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