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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Oct 07. 2024

<소설> 사지 5 完

  남자가 집에 가려는 후배를 억지로 붙잡아 마련한 술자리는 9시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가 순대를 먹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실컷 걱정과 불만을 늘어놨던 후배였지만 순대 이야기를 하며 언뜻 보인 미소 때문에 남자는 술을 더 권할 수 없었다. 일생에 얼마 되지 않지 모르는 행복의 조각을 빼앗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후배의 손에 순대를 쥐어 보내고서 남자는 정류장 벤치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겨울이 싫었다. 겨울에는 무조건 한숨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영하의 온도였지만 추위가 주는 고통이 차라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나았다. 집으로 가면 촉각을 곤두세운 가족들과의 불편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는 그 어떤 용기도 내지 못했다.


  남자는 직장에서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능력도 인정받는 편이어서 밀려날까 봐 걱정하지도 않았다. 수도권에 자리한 아파트의 대출도 거의 다 갚았다. 그러고도 집값이 올라 마음도 든든했다. 차도 있고 예쁜 아내도 있고 귀여운 딸도 있었다. 갖춰야 할 건 다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번듯한 결과물이었다. 한때는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던 것들이었다. 그 마음이 지금이라고 다르지도 않았다. 달라진 건 조금은 지친, 조금은 약해진, 조금은 외로워진 자신이었다. 물론 남자는 자신의 변화를 누구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남은 인생은 지금 이뤄 놓은 것에서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 왔었다. 그 생각에 그리 많은 빈틈이 있을 줄 몰랐다. 버티던 나날의 순간 짜증의 역치가 그날처럼 자신의 이성을 잠식하게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좀처럼 해소할 수 없었다.     


  남자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강물이 흐르는 걸 보듯이 버스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기다리는 버스도 없으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왼손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장시간 찬바람에 노출된 탓에 온몸이 마비가 된 듯 감각이 둔했지만 오른쪽 어깨만은 생생하게 통증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통증이 신경을 타고 번져 목과 관자놀이까지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고개를 들고 어깨를 폈다.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한숨을 한 번 더 쉬었다. 하얀 김이 시야를 가렸고 길게 늘어선 버스의 틈으로 ‘사지’라는 글자가 점점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몹시 추웠다. 사지에 감각이 없었다. 사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불이 바뀌고 시야를 가리던 버스가 떠나갔다. 남자의 시야에는 ‘태국황제마사지’라는 간판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왼손은 주무르기를 멈췄다. 남자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장시간 추위에 굳은 몸을 일으켰다. 빛에 이끌리는 벌레처럼 마사지 샵으로 향했다. 설명할 수 없었지만 마사지 가게에 들어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사지 가격이 염려되긴 했지만 남자는 최대한 오만 원 정도는 쓸 각오를 했다. 결혼 이후로 오직 자신만을 위한 소비는 해 본 일이 없었다. 오만 원도 남자에게는 큰 결심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훈훈한 공기가 남자의 얼굴을 감쌌다. 남자는 안경에 김이 서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시라는 인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가락으로 대충 안경을 훑으며 카운터에 붙어있는 가격표에 시선을 고정했다.


  6만 원, 8만 원, 10만 원, 12만 원, 15만 원, 18만 원, 20만 원. 다양한 코스와 가격대가 보였다. 가장 저렴한 6만 원도 남자의 한도를 벗어난 가격이었다. 남자에게는 명백한 사치였다. 그의 연봉에 비해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지만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쓰는 돈이었다. 이런 종류의 소비는 해본 적이 없었다. 남자의 머리는 승인을 거절했다. 하지만 온몸이 버티고 섰다. 이대로 물러서서 밖으로 나가면 우스운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남자에게 애원을 했다. 특히 왼손은 절규하고 있었다.     


  “10만 원으로 하죠.”     


  남자는 영화 속 배우의 대사를 흉내 낸 것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내심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때부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직원이 안내하는 방으로 가서 가운과 속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나와 자신을 위해 준비한 족욕탕에 발을 담그는 순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족욕탕의 뜨끈한 온도가 발을 타고서 머리까지 올라왔다. 태국 전통차를 마시며 눈을 감았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신혼여행 때 가보았던 태국을 그렸다. 신혼여행의 기억 속 태국은 따뜻한 나라였고 밤은 뜨거웠었다.     

  잠시 후 작은 체구의 태국여성이 꿇어앉아 남자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줬다. 옆에서 마담이 가게에 대해 설명해 줬다.     


  “테라피스트분이 왕립 마사지스쿨 나오신 실력 좋으신 분이세요. 이상한 서비스 하는 곳은 아니에요. 한국말로 간단한 소통은 가능하시니까 아프거나 하시면 말씀하세요.”


  안내를 받아 다시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방으로 들어갔다. 가운을 벗고 속옷차림이 된 남자는 멀뚱히 방구석에 서 있었다. 태국여성이 익숙하게 남자를 자리로 안내했다.


  근 몇 년간 남자의 몸에 타인의 손길이 닿은 기억이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 악수를 나눈 것이 스킨십의 전부였다.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 딸도 예전처럼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에게 태국여성의 뜨거운 손이 닿았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악력이 강했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마사지를 하면서 태국여성은 간간이 말을 건넸다.     


  “당신 너무 아파요.”

  “이렇게 뭉친 사람 처음 봤어요. 여기서.”

  “태국에서 마사지는 의사. 닥터예요. 한국 사람들 약 먹어요. 약 많이 먹어요. 근데 태국 사람들 마사지해요. 머리 아파요. 마사지해요. 배 아파요. 마사지해요. 그래요.”

  “괜찮아요?”

  “아프면 말해요.”     


  남자는 전신을 세밀하게 주물러 주는 태국여성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어깨의 통증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많이 아프면 말해요.”     


  남자는 그 누구에게든 간절하게 듣고 싶어 하던 말을 한국말이 서툰 태국여성에게서 듣게 됐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울음을 참기 힘들었다. 얼굴을 받치던 수건에 눈물이 스며들었다. 다 큰 어른인 남자는 아이처럼 울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울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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