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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Oct 02. 2024

<소설> 사지 4

  그날 이후 열흘이 지났지만 남자는 단 한 번도 현관문을 나서기 전이면 했던 ‘다녀올게’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출근 시간이 되면 거실을 울리는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기계음을 내며 열렸고 문이 닫힌 뒤에는 기계음과 함께 정적이 감돌았다. 무심코 들었던 ‘다녀올게’라는 말의 공백이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는 줄 아내와 딸은 미처 몰랐다. 그 말에서 느껴지던 묘한 안정감은 사라졌고 그 공백에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내와 딸이 무작정 사과를 할 수는 없었다. 먼저 소리를 지른 것은 남자였다. 늘 그랬듯이 둘은 남자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욕하고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못 이긴 척 한숨 쉬며 받아줄 용의가 있었지만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냉전의 상황을 견디고만 있을 수 없어 아내와 딸은 큰 마음을 먹고 행동을 취했다. 아내는 따뜻한 밥과 국을 놓은 아침 식탁을 차렸고 딸은 냉장고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크래미 한 봉지를 놓아두었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내보이는 최대한의 용기였다. 남자는 아내와 딸이 보이는 행동에 더 짜증이 났다. 그 짜증의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다. 본인도 왜 짜증이 나는지 몰랐다. 그냥 짜증이 났다. 이 제스처가 무얼 뜻하는지 알았지만 도저히 편하게 앉아 밥을 먹거나 크래미를 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국과 밥은 식었고 크래미는 봉지 채로 유통기한이 임박해져 갔다. 남자는 그저 정해진 시간이면 울렸다 꺼지는 알람처럼 집안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갈등했다. 이 상황을 계속 끌고 갈 순 없다는 생각은 있었다. 마음의 여부를 밀어두고서라도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 크래미를 씹어 삼켜야만 이 냉전이 끝날 것을 알았다. 그렇게만 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었다. 아내와 딸 모두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남자는 정확하게 그런 이유로 갈등의 끝을 보지 못했다. 평화롭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남자는 무시와 무심함을 견딜 체력이 없었다.


  남자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는 지금이 오히려 남자의 존재를 더 부각하고 있었다. 남자의 사소한 행동에도 가족들은 남자에게 촉각을 세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다지 기분 좋은 관심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관심의 한 종류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존재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있었다. 그 상황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그 양가감정에 어쩌지도 못하는 하루가 점점 늘어갔다. 남자는 무관심과 나쁜 관심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위태로운 외줄을 타고 있었다. 저급한 관심이 주는 중독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놓아 버리거나 되돌아가거나. 식탁에 밥과 국이 사라지고 크래미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리면 고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          


  집에 있는 건 고역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일찍 마쳐도 억지로 약속을 잡고 최대한 늦게 들어갔다. 열흘이 지나갈 즈음에는 회사 끝나고 만날 수 있는 지인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술을 사주겠다는 제안조차 성사시키지 못할 만큼 시간 맞추기가 힘들었다. 남자가 귀찮아서 피하기도 했던 약속이 보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한때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불쑥 연락하기 껄끄러워진 게 대부분이었다. 남자는 문득 좁아져버린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간 잡았던 약속의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마치 정치인이 민생탐방을 하듯 짧은 시간에 다양한 삶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 이혼한 친구. 늦둥이 아빠가 된 친구. 노총각 친구. 신혼 초의 후배. 아이를 대학까지 공부시킨 선배. 퇴사를 앞두고 있는 상사…….


  사람들은 별일 없냐는 질문에 별일 없다는 대답을 하고선 온갖 별 일을 쏟아냈다. 누구는 암에 걸리고 누구는 가족이 죽고 누구는 부모가 아팠다. 누구는 사업이 망하고 누구는 직장에서 위태롭고 누구는 빚에 허덕이고 누구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누구들은 누구의 이야기를 하면서 불행 경연대회에 각자의 무기를 들고 참가했다. 남자가 괴로워했던 부부간의 사라진 스킨십과 소외감. 지겹게 따라다니는 어깨통증 정도는 함부로 꺼내놓기 미안할 지경이었다. 괴로움의 범위가 다른 사람끼리 완전한 이해와 위로는 불가능했다. 남자는 말을 섞어보고서야 그 사실을 이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 보고 참고 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으로 구박받는 삶은 비슷했다. 그들의 삶이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것 또한 비슷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면 남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일 테고 딸 또한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만고만했다. 그럼에도 괴로운 건 괴로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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