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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지 Aug 16. 2024

눈이 깊은 사람

쳐다보고 있노라면 재미가 쏠쏠했다



병원 일과는 단조로우나 규칙적이다. 대게 6시 30분이면 기상해 7시 30분쯤 조식이 제공된다. 식사 전 수간호사가 환자의 상태를 미리 체크하기도 하며 9시 전후로는 주치의가 병실 회진을 돈다. 그 후로는 환자별로 필요한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도수 치료를 받든 침대에 뭉그적거리며 운동하든, 혹은 아무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마냥 한가롭기도 하다. 12시가 되면 약 30분간 중식이 배달된다.


중식 다음으로 트로트라는 디저트가 제공된다. 나른한 햇살의 꼬드김에 못 이겨 일렁이는 병실 공기에 트로트의 구성진 식감이 채색된다. 어르신들은 날마다 다른 트로트 프로그램을 섭취하며 여담을 나누곤 하셨다. 저녁 또한 이른 17시부터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곧 취침 준비에 들어선다. 20시 30분에는 눈치껏 소등할 테고, 연속드라마가 내리 병실 TV에 방영되면 이로써 기나긴 하루의 막이 내린다.


병원에 고스란히 묶여있다 보면, 사람들의 동태를 관찰하는 흥미를 터득하게 된다. 옆에서 통화하는 어르신의 어투, TV를 시청하며 거두는 추임새, 병원 관계자의 넉살 등, 많은 것들이 유머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아침 회진 시간에 주치의를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의 의사가 환자들을 대하는 방식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재미가 쏠쏠했다.



“제가 운동 몇 번 하라고 했죠? 했어요, 안 했어요?”



복순이는 의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럼 복순은 머쓱하게 시선을 내리깔고 해명할 자세를 갖춘 후,



“하려고 허는디 다리가 아파버링께….”


“해야 좋아진다고 했죠?



창과 방패의 대결에 굴욕으로 패하고 만다.






병원 관계자들은 전부 빠릿빠릿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매일 수술을 집도하는 수술 전문 병원이기에, 환자를 관리하려면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이유일 테다. 그래서인지 "아시겠죠?", "아셨죠?"라는 말마디는 의사들의 공통어였다. 나의 주치의는 유독 말끝에 환자가 잘 알아들었는지를 되묻는 어구를 꼭 덧붙였다. "아시겠죠?"는 제한된 시간 내에 환자의 상태를 실속 있게 파악해야 하는 사명으로부터 파생된 네 글자였다.



행동거지는 정신없이 분주해도 스치는 눈은 한없이 깊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수쌤’으로 불리는 병동의 수간호사였다. 물론, 다른 간호사들도 자기 앞에 놓인 환자에게 낮과 밤, 아침과 새벽으로 밀알의 정성을 차곡차곡 부어 나갔다. 항생제를 맞다가 새벽이 성큼 다가온 날에는 드문드문 잔여 용량을 확인해야 했고, 피통을 차고 있던 시기에는 아침이 오기 전 어둠 속에서 체온과 피의 양을 기록해야 했으니 말이다.



“오늘 소독하는 날인데, 남자 쌤보다는 제가 덜 불편할 것 같아서 제가 왔어요.”



때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소독 날이었다. 보통은 남자 간호사가 환자 몸에 밴드를 탈부착하며 소독약을 도포하곤 했다. 나는 어깨 환자였던지라 어깨의 단추를 가슴이 다 보일 정도까지 풀어야 했는데, 수쌤은 그게 내심 신경이 쓰이리라 생각했는지 그를 대신해 나를 소독해 주었다. 피부에 닿는 손은 차가워도 온난한 혈류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수쌤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있었다. 병실에 있으면 매일을 간호사와 독대하곤 하는데, 이날은 그녀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눈 안쪽으로 휘감기는 느낌이었다. 내가 머리를 감으러 미용실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했을 때나 심적으로 괴로워 아침부터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을 때, 돌아오는 목소리는 적당히 무정하도록 훈련된 것 같기도, 형식적인 선에서 마음을 동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바라보는 눈만은 진실했기에 말과 행동으로 측량할 수 없는 따뜻함이 진하게 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복될 거예요. 회복이 되는 건 맞는데 시간문제야. 지금 당장은 앞이 안 보이고 무서울 수 있죠. 얼마나 괜찮아지는지는 지금은 몰라요. 그런데 언젠가 회복되는 건 확실해.”



그날의 심정을 활자로 다려 놓는 지금도 수술 전과 같이 깨끗이 회복되었다고 후련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나는 어김없이 후유증에 시달리곤 한다. 다만, 수간호사의 말처럼 미세하게 좋아지는 흐름을 거듭하다 지금의 컨디션에 달하게 되었다. 그때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소망이 내 안에 있더라도, 누군가 그 봄꿈을 끄집어낸 후 발설해 주지 않으면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고 불안했다. 수술 후에도 신경이 손상된 것마냥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어 가뜩이나 염려하며 주말을 보내기도 했으니. 어쩌다 보니 시간이 해결해 준 꼴이 되었지만, 그 시간을 생으로 체험해야 했던 내게는 진부하지만 ‘잘될 것’이라는 시의적인 믿음의 선포가 절실히 필요했다. 깊은 눈을 가진 자의 온건한 믿음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지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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