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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지 Aug 04. 2024

『결혼식 가는 길』, 같이 죽으러 갑시다

영원 빼기 영원을 간구하다




절류*의 검은 잎사귀가 뿌리내린 운명이 운운하는 영원이란 무엇일까?


*버들가지를 꺾는다는 의미, 배웅하여 이별함을 뜻함.




『결혼식 가는 길』은 에이즈에 걸린 여성 '니농'의 결혼식 디데이까지 가족과 기타 지인들이 겪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새신랑, 신부 '지노'와 니농의 영원을 가로막는 것은 에이즈라는 획일적이며 파괴적인 숙주이다. 안락한 영원이란 없지만, 이상과 현실을 더 또렷이 단축하는 질병이 결혼식의 빛깔을 한없이 짙붉게 물들인다.


나만의 웨딩을 꿈꾼 적이 있다. 장소보다는 사람이 중요할 테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도 되며, 마침내 둘 뿐이어도 좋다. 대신 두 가지, 나의 결혼식에는 'Oscar Peterson'의 'Hymn to Freedom'이라는 곡이 적어도 세 번 이상 흘러나와야 하며 날씨가 흐릿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드레스는, 나의 피부 광은, 아이홀은, 양 볼의 무르익은 색은, 동그란 입술의 습기, 떨리는 손끝은 어떤 모양일지 생각하다 보면 나 홀로 훌쩍 미래의 새신부가 되어 있다.



영원 앞에서 뭘 하면 좋을까?
느긋하게 시간을 가지는 거지.
신발 벗고 출까?

p. 192



상상만으로도 깜찍하고 매력적인 서사인 자신의 웨딩 데이가 죽음을 향해 당당히 맞서는 관문이라면 그간의 상상은 밀물이 삼켜 버린 모래성처럼 하릴없이 허물어질까? 그들에게 준비된 시간은 육상 선수의 십 초도 안 되는 시합 기록과도 비슷하다. 대부분의 결혼이라는 상징은 평생을 약속하는 예식이며 평생이 지난하다면 적어도 마음이 동하는 일시적인 기간을 몽땅 렌트하는 작업이다. 마치 운동선수가 “종종 일 분도 안 되는 시합을 위해 몇 달 혹은 몇 년을 준비하는” 그 도약의 시간 어딘가에 결혼이라는 사건 또한 놓여 있을 것이다. 다만, 언약이라는 이름이 가혹하게도 ‘하나 됨’보다 ‘헤어짐’을 예견해야 함을 뜻한다면, 섭리는 급격히 왜곡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잡고 거대한 블랙홀의 모래시계를 관조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졌을 때 절대적으로 슬퍼지기만 한다.


결혼은 잔치다. 잔치는 흩어진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헤어졌던 니농의 부모 '장 페레로'와 '즈데나'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각각 먼 걸음을 내디딘다. 더욱이 즈데나는 고리노로 가는 열차 안에서 딸의 결혼식이라는 명분 덕분에 "낯선 사람이 자신의 슬픔에 다가오게 내버려두는 일, 그래서 그와 시시덕거리기까지 하는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 그 어이없음에 울고 싶어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미소를 짓게" 되는 관대함을 스스로 허용한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 있는 셈"이기에 축제는 더욱이 돋보인다. 잔치에서는 모두가 함께한다. 잔칫날의 그 요란한 소리는, 운 좋게도 다른 잔치를 벌이기 전까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비밀이 되기 마련이기에. 단테는 "이 깊은 무한함 속에서, 모든 우주의 잎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라며 자백한다.



우리는 광기(craziness)와 속임수(cunning)와 보살핌(care)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거예요. 셋 모두랑요. 'c'가 세 개네요.

p.167



사람들은 니농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니농이 반짝이는 건 침착하고 단단한 신부의 차림이어서가 아니다. "마음을 먹었으니까, 살아남기로 단단히 마음먹었으니까" 그녀의 영혼은 쇠약해지기로 예정된 그녀의 육체를 빛내 준다. 순간의 결심은 결코 사랑을 담보하지 않는다. 지노의 사랑이 꿈결같이 단발의 활력을 띠고 있을지라도 시한부의 소멸을 오롯이 홀로 맞설 것이며, 영원 없는 영원 앞에서 영원을 끊임없이 속여 말해주리라는 시리고도 순진한 약속이 그저 어리숙한 사랑의 모조품을 나타내는 것 또한 아니다. 니농의 친구 '마렐라'는 지노에게 "니농은 죽은 셈 치라고" 당부한다. 인생 제2막의 문전에서 새 삶의 동반자가 죽었다고 가정해야 한다니 이토록 잔인한 장례가 어디에 있을까. 마렐라는 지노에게 진심으로 니농을 갈망한다면, 그녀를 기다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쩌면 니농이 두 번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절박한 부연 설명에 지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니농의 두 번째 삶은 우리 결혼식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공손하게 응대한다.




그리고 그의 눈은 그녀를 따라 영원 속으로 향할 것이다.
(중략)
지금이 자기가 첫 번째 가닥을 풀 때야…

p. 198




순간이 주는 낭만은 사랑이 아닐 수 있다. 되려 상실의 시간 앞에서 신을 벗고 희망의 몸짓을 부리는 것일 뿐이다. "힙합을 들으며 트럭에 올라타서 전속력으로 침대로 돌진하는 것, 내 품 안에 달콤함을 품고 우리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무실의 복도를 질주하는" 일은 영원을 지체하지 않는다.


‘영원’이 헝클어진 머리칼을 풀어헤치는 것이라면 결혼은 나와 함께 춤을 추는 당신 앞에서 꼬아 엉킨 첫 번째 머리 가닥을 푸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매일 밤 풀린 머리카락을 세는 연인에게 횟수를 매겨 주고, 그것이 여든 번째든, 백여든 번째든 꼬인 가닥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뜬눈으로 완전한 기다림을 속삭이는 일이다.





*인용 구절은 큰따옴표로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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