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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지 Jul 26. 2024

들어가며

사무치다




우우우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자우림의 그 유명한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는 이를 약간 변주해 '스물일곱, 스물셋'으로 명명하려 한다. 아마도 원곡의 숫자들은 두 사람의 서사를 뜻할 텐데, 나의 제목은 오직 한 사람의 기수로 집약된다. 스물일곱 살 난 여자애 하나가 스물셋, 그러니까 23일 동안 어느 병동에서 유별난 희로애락을 겪었다. 이때를 떠올리며 한 편의 운문을 지으면 난잡한 정서로 주름진 노랫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우우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라는 가사에서 김윤아 씨의 추임새는 더할 나위 없다.



  바람이 부치는 추억은 갑작스레 삶을 습격하곤 한다. 그리움은 예절을 몰라서 문득, 덜컥 과도 같은 물성과 함께 뇌리의 서두 쪽으로 침투한다. 뜨끈한 날들에 쉬이 머무는 사람일수록 불현듯이 유발되는 기억 집합체의 중력은 커다랗다. 마주할수록 문질려 으깨지는 것은 안타깝게도 기억하는 몸이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추억하려다 보면 분명히 아프다. 아프다 못해 신체의 일부가 탈락하는 것 같은 상실의 우물에 수몰되기도 한다. 그날의 노래가 바람을 타고 당신을 덮칠 때면 당신의 영혼은 거기에 우뚝 서서 속절없이 청음하는 수밖에 없다. 그 반사음이 바로 요동치는 음정 혹은 절규에 가까운 “우우우우-”라는 비명이다.





  지난 4월부터 돌이켜 보면, 나 또한 빠져나간 내 일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약 두 달을 보냈다. 엄밀히는 보내졌고, 보내줬다. 나는 능동과 수동 어떠한 태도도 고집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했다. 내게 그 시기는 절대적인 태풍눈이었기 때문이다. 관절 안은 누런 고름으로 칠해졌고 병의 경로는 세척액과 함께 씻겨나갔다. 원인은 시꺼멨고 어느새 나의 왼쪽 어깨에는 시뻘건 혈관이 겉으로 나돌았다. 미온적으로나마 시간이 지나길, 시간이 어서 나를 이끌고 무사하던 나에게로 데려가 주길 매일 밤 주문하듯이 기도하는 일 외에는 사치였다.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이 세상에서 시간만큼 상투적이고 우직한 게 있을까. 나를 위해 속도를 내길 바란다고 해서 시간이 내 말을 들을 귀가 있나. 나는 결국 이 유산을 직접 보내주는 쪽을 택했다. 변질된 시간을 반드시 떠나보내리라 결심하고 비로소 끝이 보이게 되면 더디게 이해하겠다고 말이다. 그때를 돌연변이의 모종으로 치부하면 신기로운 종자는 이윽고 발화하기 마련이기에,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결국은 아프지 않게 이해될 것이라 믿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어찌나 구차해야 납득이라는 열반에 도달하는 것인지 납득하지 못한 나는 애송이요, 덜 망가진 자로소이다.


  그때는 역시나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다. 지금보다 멀리서 지금을 회상한다면, 물론 나는 지금을 사무치게 알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스물일곱, 스물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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