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만 남고 나의 형체는 없어졌다
“이혜지 씨? 여기 병상 쓰시면 되시고 종이에 적힌 입원 안내문 읽어보세요.”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나 고달프다. 만 25세, 이O지는 2024년 4월 19일부로 눈 깜짝할 새 그럴싸한 환자가 되었다. 나의 별칭은 이름의 가운데가 구멍 난 젊은 환자 말고도 조금 특별했다. 나는 어딘가로부터 알 수 없는 균에 감염되어 왔기에 다른 환자들과 달리 팔뚝에 정맥 주사를 꽂고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항생제를 투여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부류였다. 우리 사회는 지독한 팬데믹을 거치며 감염에 대한 포비아를 이식받았다. 하지만, 어깨 관절 속에 정확히 균이 자리한 것은 국가 재난 사태에 버금가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우였다. 정상 염증 수치의 약 37배가 임박하는 세균이 대체 어떤 경로를 틈타 내 몸 안에서 몸집을 불려 가게 된 것일까?
최종 진단명은 “화농성 관절염"이었지만, 몇 개의 병원을 거치며 “경추상완증후군”, “회전근개증후군" 등으로 치료받은 터였다.
통증의 역사는 이러하다. 4월 첫째 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묵직한 견갑부 통증에 시달렸다. 자다가 가위에 눌린 줄 알았건만, 등 쪽으로 주욱 뻐근한 상태가 내리 며칠을 갔다. 나는 총 두 군데의 정형외과와 한 군데 마취통증의학과를 거쳐 세 번째 정형외과에서 수술했다. 낱낱이 짚어보자면, 4월 9일 화요일, 한 정형외과에 들러 목, 어깨 주사를 비롯해 후지 내측지 차단술, 경신경총 차단술을 시행했다. 당일 나는 통증의 원인이 목에 있다는 전문의의 판단을 수긍하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11일 목요일, 통증이 느닷없이 좌측 어깨 전면부로 내려오는 게 아니겠는가. 고통의 서막은 이때부터였다. 나는 왼팔을 들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팔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공포감은 뜨끔뜨끔한 통증에 역전되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다른 전문가를 통해 통증의 원인을 절박하게 알아내길 원했다. 왜 갔던 병원에 다시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현재의 통증이 생애를 관통하는 상상적인 수준이었기에 그 의혹을 재차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통증이 만들어낸 또 다른 두려움, 지금 겪는 통증에 더 큰 불이 지펴질까 안심찮아 타의원에 갔던 것이다.
4월 12일 금요일, 두 번째 정형외과에서 왼쪽 어깨 부위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스테로이드라면 왠지 모를 부작용으로 거부감이 드는 데도, 맞은 즉시 통증이 가신다니 반신반의하며 처치에 가담했다. 조금은 특이한 경우지만 회전 근개에 염증이 있으니 스테로이드제가 통증에 직방일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달큰한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테로이드를 주입한 나는 여전히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였다.
그새 주말은 어떻게 보냈나 싶다. 침대에 누울 때면, 몇 초 지나지 않아 자세를 바꿔야 했고 베개들을 팔 밑에 동원해 어깨를 압박하지 않게끔 팔의 위치를 조정해야 했다. 팔을 밑으로 내리면 모든 무게가 쏠려 쑤욱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하루종일 팔꿈치를 굽혀야 했다. 편하게 걷지도, 앉지도, 눕지도 못하니 이를 관할하는 호흡조차 고통이었음이 틀림없다. 진통제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입에 머금은 약이 식도를 타며 경로를 이탈했는지 약효는 미미했다. 가만 보아도 잘못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15일 월요일, 통증의 수위는 가라앉지 않았다. 의사는 호전되지 않은 채로 다시 내원한 환자를 보고 희한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물이 차지도 근육이 파열되지도 않고 저번처럼 염증이 있는 정도인데 팔을 움직이면 격심한 통증을 호소하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라. 의사 또한 끝내 진통제 주사와 항생제를 처방할 수밖에 없어 어지간히 난감했을 듯하다.
4월 17일 수요일, 마취통증의학과에 방문했다. 백발의 의사는 나의 증상을 패드에 받아 적으며 탱탱하게 부어오른 팔뚝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려 했다. 이날부터 나는 진료 내용과 치료 과정을 곧장 기록했다. 병의 진행은 이해보다 앞섰기에, 상황을 더디게라도 복기하며 나름대로 힘써 소화해 낼 방도를 준비한 것이다. 병원을 나서며 기억이 휘발될라 서둘러 필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두박근 염증- 심하다- 오래 걸릴 듯
일주일치 약. + 링겔 + 물리치료 받음
역c자 목 + 아플 것
엑스레이
초음파 두 번
혈관주사(소염진통제) 링겔
피검사 (화농성인지 확인 위함. 만성 염증이면 스테로이드 주사가 잘 듣지만, 급성 화농성 염증이면 오히려 독이다. 그전에 맞았던 스테로이드 주사가 혹시나 염증에 안 좋았을지 확인하려고) + 3일 뒤 방문할 것
항생제 반응검사
초음파 다시. 이두박근 염증/인대 염증/어깨 힘줄 염증
항생제 주사 링겔
약물 물리치료1
물리치료 2
거친 메모의 사본이 그때의 미궁을 조금이라도 파헤쳐 준다면 좋으련만. 지병 없는 20대 환자에게 들이닥친 의학 용어는 어지간히 서툰 기운을 풍긴다. 기록된 1주일 동안 설거지, 빨래 등 양손이 필요한 일상의 잡다한 일과 하다못해 머리를 묶고 탈의하는 등의 사소한 과업을 온전히 처리할 수 없었다. 오로지 멀쩡한 오른팔로 대부분의 일을 수행해야 했다.
4월 18일 목요일, 밤새 울부짖었다. 무언의 통증은 갈수록 신랄해졌다. 팔을 뽑아내는 동시에 옆에서 발로 쥐어 밟는 것 같은 악몽에 온종일 굴복했다. 허공에서 앰뷸런스의 환청이 지겹도록 웅웅댔다. 새벽을 배회하며 아프다고 고함치면 거친 숨소리만이 뒤따를 뿐이었다. 좁은 방을 휩쓰는 유일한 생명체는 그마저도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그때라도 119를 호출해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었더라면 수술 날짜를 당길 수도, 수술을 막을 수도 있었을 성싶다. 의료 파업이라는 기막힌 상황이 환자 된 입장으로 괘씸하고도 무력하게 느껴지기라도 했나. 혹시라도 내가 뉴스에 비친 응급실 뺑뺑이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우려에 지레 겁먹었던 걸까.
살면서 24시간 내내 ‘아프다’라는 유아적인 발상에 지배된 적이 있었던가. 며칠 동안은 잠에 들면 폭폭 쑤시는 바람에 깨어나기라도 했지만, 이제는 눈을 깜박이는 순간이 지옥 같음에도 기꺼이 잠으로 달아나지 못했다. 내 세상에서 아프다는 착상 외에는 전부 지워져 갔다. 왼팔만 남고 나의 형체는 없어졌다. 아픔은 삶의 형상을 파괴적으로 좀먹었다. 이름 없는 통증 어귀에 자꾸만 진을 빼앗겨 치료라는 기운이 제대로 돌고 있는지 괜한 의심만 늘어갔다. 병원이라는 산물은 지식의 체급이 극명히 갈리는 곳이다.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약자였고, 그들은 전문가였다. 다만 나는 심란함에 넋을 잃고 너덜너덜해져 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