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써부터 아픔에 얼큰히 절여진 사람이었다
통증을 물에 타서 희석해 버리고 싶었다.
밤새 괴로움에 찡그리며 발을 동동 구르다 보니, 의사의 지침은 금방 어겨졌다. '피검사, 확인 위함, 3일 뒤 방문할 것…' 나는 3일 후 방문하라는 처방을 지켜내지 못했다. 4월 19일 금요일, 날이 밝고 한참 지나 집을 나섰다. 걸을 때의 반동마저 통증을 유발했기에 오른손으로 왼팔을 부여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원장 뒤편에 못 보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간호사를 포함해 네다섯 의료진이 그 방에 있었는데 내가 당장이라도 실려 나가길 원했던 건지 글쎄 의료 군단이 즐비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며칠 전 피검사의 결과가 나왔다. 결론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염증 수치가 확인되어 원장이 그날 나를 수술할 병원으로 전송했다.
나를 애처롭게 직시하던 의사 앞에서, 원인 모를 통증에 속이 질려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파요." 왼팔을 꽉 부여잡느라 흥건하게 젖은 오른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니 앞뒤로 손이 축축해졌다. 의사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는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진료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온몸을 덜덜 떨며 우는 사이 백발의 원장은 전화기를 잡고 상급 병원에 연락을 돌렸고, 그렇게 단숨에 대학 병원에 예약되었다. 의사의 권위를 느낄 새도 없이 서러웠지만, 그는 그 권위를 허투루 내빼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치료법을 필사적으로 찾아냈다. 병원 예약이 4월 23일인데, 주말이 지나면 안 된다며 대학 병원이 아니더라도 당장 당신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최대한 빠르게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의 걱정은 “젊은데 어떡하려고 그래요. 나 봐요, 나도 팔 아주 잘 올라가잖아.” 에서 “이거 아니야. 이게 뭐야. 이러면 위험해. 울지 말고. 병원에 전화했으니 병원에서 차 보내줄 거예요. 이 염증이 어깨 쪽에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몸 안에서 돌면 위험해진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너무 걱정하진 말고. 잠시만 기다려 보자고.”라는 아우성으로 번졌다. 돌이켰을 때 그가 ‘패혈증’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건 너무나도 황망해하던 나에 대한 일종의 배려였으리라. 그는 나의 고통이 가늠되었던 건지, 말은 분명하나 날카롭지 않게 또 눈과 손은 따뜻하나 미련하지 않게 이 가엾은 환자를 대우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큰일이라도 난 줄 그때서야 알았다.
“(중략)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란 뜨거움과 차가움, 주관과 객관이 어우러졌을 때 한층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에.”
–기형도 전집, 간행사
팔뚝을 붙들고 숨을 고르느라 말귀를 전부 알아듣지 못했다. 경황없는 나는 간호사의 인도 하에 처치실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원장은 2차 병원과 연락하며, 자체적으로 나를 실어가게끔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라고는 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젊은 의사는 내게 와서 나를 안심시키려 했는지 자신이 정리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발설했지만 몇 개의 단어 빼곤 공기 중에 날아 흩어지게 되었다. 기억나는 말을 조합해 보자면 작은 구멍을 뚫는 건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고, 나의 경우가 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이하다는 게 이렇게 잔인한 비수일 줄은 몰랐다. 아플 때마저 골치 아플 정도로 특출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원인은 특정할 수 없고 외부에서 세균이 들어온 것이라고. 물론 그것을 의도적으로 주입했을 리는 없고, 본인의 상피인지 표피인지 피부 세포의 균이 침입했을 수도, 아, 아무래도 확실하게 말해드릴 수는 없다고.
사실 나는 원체 뼈와 관련된 것들이 예전부터 말썽이었다.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측만증, 역C자목처럼 고질적인 자세 문제로 인해 몸뚱이가 한 번씩 삐그덕대는 거 말고, 이렇게 외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겪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통증이 어깻죽지로 넘어온 이유는 무엇이며, 관절 주머니 내부가 염증으로 곪아 붙어야 했던 이유 또한 진실로 무엇인지, 원인을 헤아리기 앞서 우선 후들거리는 다리부터 고정시켜야 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병원에서 직원이 파송되었다.
“원래 이런 경우가 잘 없는데, 원장님께서 전화하시니 특별히 온 거예요.”
병원 차를 탑승하는 동안 깔리던 간질간질한 적막이 약간의 이상한 감정을 돋웠다. 환자로서 버젓이 조수석에 탑승하고, 병원 사무장이었는지 단정히 차려입은 병원의 실무 담당자가 신사적으로 환자를 나르니 되려 내 통증에 예의를 갖춰야 될 것 같았다.
“코앞인데 엄청 막히네요. 원래 이 정도는 아닌데.”
'그러게요'라는 대답 대신 도로의 한복판에서 내가 이 병원으로 간다면 당장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이렇게 실어 날라지는데 이제 아프지 않겠지. 수술 전문 병원이라고 했지만, 내가 과연 수술을 하게 될까. 내가 과연 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벌써부터 아픔에 얼큰히 절여진 사람이었다.
도착 후 진료 대기 중에도 다리가 얼마나 떨렸는지 모르겠다. 긴장이고 나발이고 그저 고통의 발버둥이었다. 의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 팔뚝을 보고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거 째야겠는데?” 라며 갸우뚱했다. 땅땅하게 부풀어 굳어 있는 팔뚝을 조금만 누르기라도 하면 나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의사가 대뜸 그곳을 바늘로 찔러보니, 누런 고름이 30cc가량 나왔다. 그 이유는 여기서도 여전한 미지수였다. 침습적인 사례가 맞다고는 하지만, 원인을 모르거나 몰라야 했다. 병원 문이 닫힐 때쯤에 힘겹게 엑스레이와 MRI를 찍었다. 간호사가 나의 환복을 돕는 동안 근방에서 의사가 구상하는 수술에 관한 비공식 논의가 내 귀에 스쳤다. 이 사태가 현실인지 꿈인지 좀처럼 분별하기 어려웠다.
원장의 말에 의하면 이랬다.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인데, 우선 나이가 젊고 주말 내로 균이 몸 전체에 퍼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니, 좀 더 안전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 주말 동안 수술실도 확보하고 마취과 선생과도 연락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입원해서 주말 내내 항생제로 급한 불을 끄고 월요일에 응급 수술로 당신을 넣어 주겠다며 내게 통보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납득하기도 전에 이미 ‘수술함’을 전제로 말하는 것조차 내게 꽤나 폭력적인 언사였다. 우편함에 던져진 편지처럼, 내가 임의로이 어딘가로 휙휙 주고받아지면서 나는 점점 요연해졌다. 보호자에게 전화는 돌렸나요, 아직이요, 불필요하게 입을 뻐끔할 겨를도 없이 나는 보조기를 차고 입원 병동으로 올라갔다. 원장은 가운을 벗고 퇴근을 했을 테고. 아마 그 또한 머리 아픈 주말을 보냈으리라.
그렇게 나는 502호에 서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