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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지 Aug 07. 2024

젊은 환자의 응급 수술

젊음은 이곳과 맞지 않는 환자라는 사실만 부추길 뿐이었다



사건을 단편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의 자애로운 배려이기도 하다. 내가 어쩌다 이 병원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흩어진 시간만이 안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나는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였다나. 나는 와중에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식의 연락을 여러 편에 돌려야 했다. 실은 모든 메일이 '안녕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야 했다. 아프면 죄송한 일이 된다. 안녕하지 못하면서 안녕을 가장해야 하는 건 위선이기에 보편적인 인사말은 좀처럼 거북했다. 내가 학교, 가족, 친구 등 여럿에게 죄송하는 동안만큼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입원하는 주말 동안 내 왼팔은 보조기 안에서 꼼짝없는 신세가 됐다. 의사가 연신 강조한 아이스 백 또한 팔뚝에 얹고 지냈으며 오른팔에는 수술용 주삿바늘이 심겼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빈둥빈둥 보내는데도 유독 힘들었던 건 침상에서 가만히 잠을 청하는 일이었다. 일자로 누우면 어깨에 압력이 더해져 침대를 반쯤 세워 놓고 앉아서 자야만 했다. 보조기와 아이스 백의 껄끄러운 부피감 때문에 팔을 살며시 들어 자극이 덜 되는 지점을 미세하게 찾아 그대로 정지해야 비로소 잘 준비를 마치게 된다는 점도 된통 번거로웠다. 병동의 무거운 공기에 치여 겨우내 잠에 들면 1시간에 한 번꼴로 눈을 떴다. 항생제를 삼키기 위해 병원 밥도 잘 먹어야 했다. 그 밥이 달게 느껴지는가 싶더니 수술을 알리는 금식이 시작되었다. 주말이 지나가고 수술 날이 되었다.






4월 22일 월요일, 외과적 수술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러니 전신마취 또한 내게는 하나의 관건이었다. 사전에 철저하게 마취제와 술기를 선정했다고 한들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전 10시경에 예정되어 있던 수술은 어김없이 지연됐다. 나의 경우, 감염 방지를 위해 수술에 사용한 기구들을 평상시보다 더 오래 세척해야 하므로 첫 순서로는 수술이 어렵다고 안내받았음에도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흘러갔다. 오전 중에 수술한다고 입을 떠벌린 바람에 이른 아침 멀리서 나를 찾아온 손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심장은 대차게 요동쳤다. 시간이 지나 서서히 긴장이 풀리긴 했어도 맨 속의 각성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언제 수술방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내 이름이 호명됐다. 나는 무언가 하려던 참이었는데 간호사가 내 앞을 비장하게 막아서길래 그게 무엇인지 끝내 기억도 못하고 헐레벌떡 수술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볕이 내리쬐는 오후,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수술실로 걸어갔다. 문 안쪽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수술실의 반투명한 슬라이딩 도어가 엄마 몸체의 해상도를 낮출 때까지 그쪽을 지긋이 바라봤다. 뒤를 돌면 더이상 물러갈 곳이 없었기에 최대한 천천히 몸을 비틀었다. 드디어 이곳에 입성했으니, 수술이 빨리 끝났으면 싶다가도 긴박한 두려움 또한 덩달아 증폭되었다. 내가 그려온 수술실 광경은 미디어의 표상이었다. 청록색 천으로 덮인 수술대에 누우면, 그때 눈만 내놓은 의사가 컴컴한 조명을 등지고 내 위로 얼굴을 내민 다음 "수술 잘해줄게요"라든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거예요"와 같은 격려를 거두는 식이었다. 걸어가면서 포착한 수술실은 희고 선명할 정도로 밝았고 병원의 가장 취약한 구역이라기보다 어느 연구실의 서재 같았다. 수술 테이블 옆으로 번잡하게 질펀한 선반과, 어수선한 광경은 예상 밖이었다.


수술방 간호사들은 나를 수술대에 눕히고 수술 착수에 서둘렀다. 그들은 그저 내가 빨리 마취되길 바랐던 것 같다. 나를 아래에 두고 “라인 왜 이렇게 잡아놨어” 라든지 “잘 들어가요?” 같은 최소한의 말만 토스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바빠 보였다. 나의 오른편에서 마취제를 투입하던 간호사와 내 위쪽으로 눈이 뒤집혀 보이는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소통이 어느 정도 끝날 때쯤 마취제는 투여되고 있었다. 하관에 생소하리만치 차가운 질감의 실리콘 마스크가 덮어졌다. 얼굴이 상하 반전된 의사는 내게 숨을 크게 한 두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라고 했다. 나는 호흡이 가로막히는 느낌이 이상해, “불편해요”라는 짧은 대사로 마스크를 건드리며 반항했지만 결국에는 하라는 대로 숨을 크게 쉬어 버렸고 그렇게 기억이 끊겼다.





나중에 듣고 보니 수술실 밖으로 나오기까지 대략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수술 후 회복실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상황은 들어서 알게 되었고, 내가 이동식 침대에 실려 나와 병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의식이 약간 돌아왔다는 것부터 기억한다. 힘 좋은 간호사가 수술의 증거들을 치렁치렁 매달고 나온 나를 병동의 침대로 옮겼다. 나는 그저 왼쪽 어깨가 형언할 수 없이 뻑적지근했다. 간호사들이 후처치를 빠르게 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너무 아프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신없이 말하지 않을 때는 다리가 대신 달달 떨리며 이질적인 전율을 내비쳤다. 눈에는 눈물이 나왔다가 식었는지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고, 보조기에 달린 근육 운동용 작은 공은 손에 꽉 쥐어져 있었다.






5시까지 침상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엄마는 통증을 잊고 정신없이 잠들고 싶어 하는 딸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며 온갖 심통을 받아 챘다. 그녀는 딸이 혹시라도 아플라 최선을 다해 무통 주사 버튼을 주기에 맞춰 눌렀다. “아이고 서러워." 엄마는 간호사의 딱한 감탄사가 그렇게나 고마웠다고 했다. 나와 엄마는 서른 살이나 차이 나 당신의 나이가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는데도, 여기서는 나의 언니 같아 보인다는 말들을 줄곧 들었다.


수술을 끝낸 의사가 한 시간 정도 지나 병실에 왔다. 의사는 수술 브리핑을 하며, 어깨에 내시경을 뚫자마자 고름이 솟아 나온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고름을 세척하는 데 관절경만으로는 부족해 피부를 절개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들러붙은 것들을 긁어내는 데 애를 먹었다고. 수술 전에는 마치 나이가 무기가 되어 위험으로부터 막아줄 것처럼 행세했지만, 사실 나이는 안심책이었다. 젊음은 완전한 메리트가 되기도 전에 이곳과 맞지 않는 환자라는 사실만 부추길 뿐이었다.


수술은 잘 끝냈다는 말에 감사하다며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부모님과, 더 아래로 고개를 집어넣는 의사, 말은 안 해도 안심하는 병동의 분위기. 비록 누워서 곁눈질하게 되었지만, 서로의 고개가 엎어진 채 M자를 형성하던 희미한 모습에서 화기가 느껴져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가도 잊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기침하며 전신마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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