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

내가 좋아하는 것

by 봄날의꽃잎


나는 파도 소리를 좋아한다.

바다를 꼭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려도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눈보다 귀가 먼저 바다를 알아본다.


제주의 바다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길을 걷다 고개를 들면,

차를 몰다 신호에 멈추면

어느 쪽엔가 늘 바다가 있다.

그래서 바다는

특별한 풍경이라기보다

생활의 배경에 가깝다.

늘 거기 있어서

굳이 감탄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하지만 사라지면

금세 허전해질 것 같은 존재이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몇 개의 자리 중

유독 좋아하는 곳이 있다.

정해진 이름도 없고

누가 알려준 곳도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으면

괜히 오래 머물게 되는 자리.

그곳의 바다는

날마다 다르다.

잔잔한 날도 있고,

파도가 연달아 부서지는 날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쪽이든 다 좋다.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마음이 조용해지고,

파도가 거친 날에는

내 안의 소음이

대신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갈 때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철썩, 밀려오고

철썩, 흩어지는 반복.


그 소리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기쁨도 슬픔도 요구하지 않는 흑백의 소음 같다.

해석하지 않아도 되고,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소리.

생각해보면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다.


사나운 말소리, 날이 선 말투는

금세 나를 지치게 한다.

말의 내용보다 그 소리의 결이

먼저 마음에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대부분 소리가 남아 있다.


파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힘내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왔다가 가는 일을

자기 몫처럼 반복할 뿐이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나는 굳이

어떤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버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가만히 서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보러 가기보다

파도 소리를 들으러 간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바다이지만,

그 소리 앞에서는

매번 조금 다른 내가 된다.

말없이 머물다 가는 소리.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 느슨해지고,

조금 덜 애쓰게 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도 여전히

파도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