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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커뮤니티를 위한 용기: 소수 의견의 힘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느낀 생각의 모음_5

by Balbi


다수의 선택과 의견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디자인 시안을 내놓고 선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중의 선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기본적인 자간과 행간조차 정리되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깨지며 디테일한 부분이 엉성한 시안들이 오히려 선택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완성도 높은 시안이 외면되고 엉성한 시안이 선정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치 헛수고를 한 듯한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 (내 시안이 아니더라도, 다른 완성도 있는 시안이 선정되었다면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사례들을 겪으며 다수의 선택과 의견에 대해 다시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몇 년 전 아들이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다수 의견의 불합리성에 대해 나눈 대화였다. 그 이야기를 계기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침묵의 나선 이론’까지 접하게 되었으니, 이번 덕질도 결국 공부로 이어졌다.


침묵의 나선 이론이란?

침묵의 나선 이론은 엘리자베트 노엘레-노이만이 제안한 이론이다.

자신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과 일치한다고 인식하면 자유롭게 표현하지만, 소수 의견이라고 인식하면 다수로부터의 소외를 우려해 침묵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소수의 의견은 점점 드러나지 않게 되고,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미디어를 통해 여론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의견은 더욱 강화되고, 소수의 의견은 점점 위축되어 결국 '지배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이 현상을 나선의 형태에 비유해 침묵의 나선이라 부른다.


침묵의 나선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설명된다.


첫째, 정보적 영향(Informational Influence)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개인들은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 따르는 경향이 있다.


둘째, 사회적 영향(Social Influence)으로서 인간은 타인과 조화를 유지하려는 성향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행동 및 태도를 취하려 한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승인과 인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 일치하는 시각과 행동 양식을 취하게 되며, 반대로 독특한 견해나 반대 의견 표출 시 비판 및 배척당할까 두려움을 느낀다.


팬덤 안의 침묵의 나선

이 이론은 팬덤 문화에서도 자주 관찰된다.


첫째, 정보적 영향이 팬덤 내에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팬덤 내에서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의견이 이미 형성되었다면, 개인들은 자신만큼 충분한 정보를 가지지 못해도 그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주로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다수의 의견과 정보가 공유되는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영향 역시 팬덤 내에서 관찰되어 진다. 팬들은 타인과 조화를 유지하려는 성향 때문에 다른 팬들과 동일한 시각과 행동 양식을 취하려 한다. 이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승인과 인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개인들은 독특한 견해나 반대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꺼리고 다수의 의견에 순응하게 된다.


팬덤도 결국은 사람이 모이는 소사회인 만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축소되어 그대로 나타난다. 여론에 따라 분위기가 형성되고 특정 그룹의 분위기에 휘둘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 침묵의 나선 이론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의견에 대한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여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다수의 비판과 공격에 대처하고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멘탈을 갖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경청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소수 의견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다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소수 의견에 대해 관심과 존중을 가져야 한다.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토론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서로가 노력한다면, 다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소수 의견이 새로운 시각이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SNS 타임라인을 본인이 보고 싶은 콘텐츠로 구성한다. 그래서 본인이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 보고 그렇게 파악된 여론이 다수 의견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SNS 는 소수의 파워 유저들의 영향력에 의해 지배당하기 쉽다. 때문에 어떤 의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동안 이미 다수의 의견이 형성되는데, 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익명으로 ‘마녀사냥’을 당하거나 신상 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SNS 상에서는 1퍼센트가 콘텐츠를 생산하고, 9 퍼센트는 그 내용을 전달하고, 나머지 90퍼센트는 관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 시대는 자신의 소수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침묵의 나선 이론은 역동적이고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설명력을 가지고 있다. 여론의 움직임, 특히 선거 기간 동안 여론의 동향을 설명해 주고 뉴스 매체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반면 침묵의 이유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침묵 효과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구학적, 문화적 차이를 간과하기도 한다.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_침묵의 나선 이론 p260>


공동체의 기반은 함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지, 단순히 함께 있거나 지나가다 부딪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것은 ‘같이 있는 것’과 ‘각자 따로 같이 있는 것’, 즉 적극적인 상태와 수동적인 상태의 차이다.
<고립의 시대, p350>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열린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내면 ‘공격’이라고 받아들이거나 깊이 고민하지 않고 배척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보다,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건강한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커뮤니티가 오래 상생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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