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김밥 한 줄에 1천원 하던 때가 그립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부담 없이 사 먹으며 한 끼 때우기 참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 되어 버렸다.
‘우리 집 외식은 없다!’ 선포 후 정말 거의 모든 음식을 집에서 해먹고 있는데 최대한 손 많이 안가는 쉬운 음식들만 하고 있다. 김밥도 세트로 판매되는 재료를 사서 그 안에 있는 재료로만 해서 먹으면 쉽고 간단한 음식이다. 하지만 난 꼭 필수로 몇 가지 재료를 추가한다.
세트엔 김, 단무지, 우엉, 햄, 맛살이 기본이지만 여기에 오이, 당근, 달걀은 꼭 더 넣어서 만든다. 특별하지 않은 재료지만 넣고 안 넣고 맛의 차이가 커서 꼭 넣게 된다.
햄과 맛살은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 준비한다. 달걀은 5~6개를 큰 양푼에 풀어 소금을 살짝 넣는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넣고 약한 불로 타지 않게 익힌 후 뒤집으면 두툼한 달걀지단이 만들어진다. 오이는 가늘게 채를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다. 절인 후 물기를 꼭 짜고 오이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사라지지 않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룬 후 살짝 볶아준다. 당근도 가늘게 채를 썰어 소금을 살짝 넣고 기름을 두룬 후 볶는다. 당근을 볶을 때는 당근의 식감이 살캉살캉 할 정도로 익혀준다. 너무 푹 익혀 뭉개지면 안 된다.
우리 집 김밥의 핵심은 오이와 당근이다. 일반 분식집에서 판매하는 김밥에는 오이와 당근을 단무지처럼 길게 썰어 말아주는데 난 채를 썰어 재료를 준비한다. 친정엄마가 오래전부터 만들어 오신 비법인데 이렇게 만든 김밥이 식감이 더 좋고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맛있다.
요즘 음식을 하며 식감에 예민해졌다. 그동안 당연히 들어가던, 김밥에 메인이라고 생각하며 넣었던 긴 단무지의 식감이 거슬렸다. 김밥을 썰어서 먹으며 다른 재료들은 함께 어우러져 뭐 하나 튄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유독 단무지가 겉돌고 식감이 투박하게 느껴졌다. 이런 느낌 때문이었을까? 예민한 첫째는 김밥을 먹을 때 단무지를 빼고 먹거나 아예 김밥을 말을때 단무지를 넣지 말라고 주문을 한다. (분식집에서 사올 때도 “두 줄은 단무지 빼주세요.”) 단무지가 들어있는 김밥을 먹을 때의 풍경은 참으로 웃기다.
첫째가 단무지를 쏙쏙 골라 빼내서 둘째에게 준다. 그럼 둘째는 그 단무지를 받아먹는다.
“단무지 뭐가 맛있다고 그걸 받아먹고 있어? 짜잖아.”
“아니야, 맛있어.”
“넌 단무지 빼고 먹으면 무슨 맛으로 김밥을 먹니? 김밥은 단무지 맛으로 먹는 거 아니야?”
“아니야, 단무지 빼고 먹어봐 더 맛있어.”
“아이고, 한 놈은 맛없다고 골라내고, 한 놈은 그걸 받아먹고……. 그래, 버리는 거 없고 좋네.”
단무지를 거부하는 첫째는 단무지가 가지고 있는 맛과 식감이 너무 강해 다른 재료와 어우러지지 않으며 다른 재료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 단무지가 싫단다. 어릴 때는 ‘그냥 싫어, 빼줘.’ 이었다면 크니 그 이유가 명확해졌다. 어릴 때는 그냥 입맛이 예민, 까칠한 녀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명확한 이유를 듣고 나니 자신만의 기호(嗜好)가 확실해지고, 하나씩 찾아가는 단계라는 생각에 이해하고 존중해 주기로 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찾고 알아 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한 것을 모르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자신의 색깔을 모른 채 여기저기 휩쓸리는 건 좋지 못하다 생각한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등 사소한 부분 하나에서부터 자신만의 기호를 찾아간다면 조금 더 확장된 문제에서도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각자의 기호에 맞춘 김밥을 말고 있다. 그런데 자꾸 김밥 옆구리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