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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본능

by Balbi Dec 28. 2024

나에게도 덕질 본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년 전이었다. 학창 시절 발라드 황제 신승훈의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열렬히 빠져들거나 적극적으로 팬 활동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덕질을 시작하니, 그 재미와 몰입감은 생각보다 컸다.


첫 덕질은 코로나 시기 2년 동안 열심히 했다. 뭐든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나도 모르게 너무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생기고, 열정도 자연스럽게 시들어갔다.

그 즈음 한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그전까지 내가 덕질하던 가수 팬카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가수 팬카페는 다양한 활동이 많아 부지런해야 하고, 열정이 넘쳤다. 반면 배우 팬카페는 마치 작가들의 모임 같았다. 회원들의 글솜씨가 뛰어나 매일 감탄하면서 활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늘 하던 말이 있다.

“one singer, one actor. 덕질은 이 조합이 가장 이상적이다.”


2023년, 덕질에서 멀어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있던 어느 날, 팬텀싱어4 광고 영상이 나를 유혹했다.

시즌 1, 2를 감동적으로 봤지만, 시즌 3은 건너뛰었기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유튜브에서 시즌4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매주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특히 내 시선을 사로잡은 팀이 있었다. 뮤지컬 배우 김지훈과 테너 진원이 결성한 팀, 진지맛집이다.

“무대에서 당신을 빛나게 해주겠다”라는 김지훈의 말이 립서비스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이들이 함께 만든 무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첫 무대는 역대급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멋진 무대가 나올 줄은 몰랐다. 유튜브 조회수가 275만 회를 넘은 것을 보면, 나만 감동한 게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https://youtu.be/J6Zcjqf26zo?si=YdzE3WiABvceCsz7


이후 테너 정승원이 합류하며 팀명은 원이네 진지맛집으로 바뀌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이탈리아 노래였지만, 가사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내게 깊이 다가왔다. 감동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함께 방송을 보던 둘째도 말했다.

“엄마, 이 팀이 1등이네.”

정말로 프로듀서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팬텀싱어들의 레파투아가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메인 보컬”, “음악으로 축복받은 무대” 등 더할 나위 없는 찬사가 쏟아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https://youtu.be/9F_y3IP5UBc?si=MEDJrc36kA-JiTR1


https://youtu.be/Rtp2WFp0BmA?si=1JNTk9Y63FKY940u


결국 바리톤 노현우까지 합류해 MZ네 진지맛집이 결성되었고, 이 멤버 그대로 결승까지 가서 리베란테가 탄생했다. 최종 결승 팀 결성당시 이들이 흩어질까 맘을 졸이며 방송을 지켜봤다. 김지훈, 진원, 정승원, 노현우 이 4명 완전체의 노래를 오래도록 듣고 싶은 맘이 그만틈 컷다.

결승을 지켜본 나는, MC 전현무의 “제4대 팬텀싱어 우승팀은 리베란테!”라는 발표에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내 일이 아님에도 행복했다. 내 자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쁜 걸까? 아마도 이것이 덕질의 묘미일 것이다. 나의 덕질은 이렇게 또 시작되었다!


리베란테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도 저렇게 멋지게 자랐으면 좋겠다.’

요즘 방송을 보면 어느새 엄마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멋진 무대를 볼 때는 “뉘 집 아들인지 참 잘 컸다”는 흐뭇한 마음이 들고, 반대로 나쁜 사건이 보도되면 “그 부모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은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아들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내 시야는 한없이 좁아진다.

어제도 수학 공부를 안 한다고 구박했는데, 리베란테를 보며 “우리 아들도 음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참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하다가도,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좋아하면 열심히 해봐”라고 응원하게 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국영수를 놓칠까 걱정하니, 내 모순된 태도가 언제쯤 멈출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덕질은 나에게 작은 행복을 주고, 아이를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리베란테를 보며 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막연히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그 마음을 잊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이무진처럼 될 수는 없다.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보길 바라는 내 마음은 여전히 변함없다.

결국, 내가 조금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덕질은 그렇게 내 삶을 조금씩 더 따뜻하고 너그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 작은 행복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을 빛나게 하지 않을까?


“수학 좀 못하면 어떠냐. 애미가 마음을 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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