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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다시 찾아온 감정의 파동

by Balbi




갱년기이고 가을이라 그런가? 요즘 마음이 유난히 몽글몽글하고, 별 이유 없이도 울컥해진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숨기고 있지만, 내 안의 감정은 널뛰기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친다.


요즘 느끼는 이 묘한 파동은 사춘기와 20대에 겪었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결과 닮아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아, 지금 내가 이런 감정이구나’ 하고 꽤 빠르게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순간의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과거엔 그걸 몰라 감정이 나를 끌고 갔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한 번 깊이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그래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영화나 드라마는 되도록 피한다. 이것 역시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그런 감정에 깊이 잠겼을 때의 심적 피로감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피하는 것이 언제나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감정을 건드리는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스스로 감정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툭 떨어지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초등 4학년이 된 둘째와는 요즘 티키타카가 참 잘 맞는다.

음악을 듣다 감정이 흔들려 눈물을 보였다는 아이는 “나 엄마 닮았구나” 하며 웃는다.


“엄마도 노래 듣다 울어?”

“그럼. 감동되거나 슬프면 눈물 나지.”

“오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유튜브로 노래 들려줬는데, 나 그거 듣다가 울었거든? 그랬더니 친구들이 나보고 F래.”


대문자 T에 가까운 성향의 나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아이와 똑같이 F의 영역에서 머문다.


감정의 파동은 때로 피로하게 느껴진다. 감정 소모가 커서 이런 파동을 조금 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의 이 울컥함도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사춘기와 젊은 시절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이런 감정들이 다시 찾아온 것이 당황스럽기는 하다. 매년 느낄 수도 있었던 감정인데, 그동안 육아에 매몰되어 놓치고 지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이들이 조금 커 여유가 생기자, 그 틈을 타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든 것 같다.


하지만 예전처럼 감정에 휘둘리던 내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폭풍을 지나 지금은 알아차림으로 나를 조절할 수 있다.

이번 가을도 무사히 지나갈 것이다. 그래야 살아지니까.

그렇지 않으면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에, 중심을 단단히 잡고 현명하게 이 계절을 건너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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