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없으니, 기억이 남는다
군인 시절, 달리기는 늘 ‘검정’의 대상이었어요.
연령별로 기준이 다르긴 했지만, 정해진 시간에 3km를 뛰지 못하면 ‘체력 미달’이라는 도장이 찍혔습니다.
검정 결과는 바로 인사평가에 반영됐고요.
진급에 영향을 주니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일반 부대보다 기준이 높아서, 1급 이상을 받지 못하면 ‘재검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죠.
심적으로 가장 큰 부담은 늘 '달리기'였습니다.
평소에 달리기를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뛸 때 느껴지는 통증이 썩 싫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국가에서 봉급을 받는 군인은 언제든 국민을 대신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직업이기에, 그 정도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은 참을 수 있었지만, ‘기록’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늘 숨이 막혔던 것 같아요.
이상하지요. 평소에 달리기를 싫어하지 않았는데, 체력 검정을 앞두고서는 왜 그렇게 긴장이 되었을까요?
달리기는 원래 즐거운 놀이였는데, 군대에서의 달리기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달리는 것이 힘들었던 게 아니라, 평가받는 게 두려웠던 것이겠죠.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체력검정 날.
동료들의 태도는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1. 한 부류는 몇 주 전, 혹은 몇 달 전부터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들
2. 또 한 부류는 ‘죽었다 생각하고 그날만 견디자’고 마음먹는 사람들
비율로 따지면, 후자 쪽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어차피 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드니까 그냥 하루만 죽자."
그 말이 당시엔 꽤나 합리적으로 들렸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뛰는 것은 좋아했지만, 기록은 싫었거든요.
누가 나를 시간 안에 몰아넣고, 숫자로 평가하면, 좋아하던 일도 싫어지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달리기는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누가 평가하는 것도 아닌 달리기.
기록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과 컨디션에 따라 뛰는 달리기.
누군가는 새벽을 뚫고 집 밖으로 나가고,
누군가는 저녁 햇살을 뚫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완주를 목표로 뛰고,
누군가는 숨을 가다듬으며 풍경을 수집하려 뜁니다.
그 모든 달리기는 '각자의 정답'이고,
그 누구도 틀리지 않은 달리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달려부론'을 만들었습니다.
서울, 경기, 충청, 영남, 호남, 그리고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뛰는 온라인 운동 모임.
더 좋은 기록을 인증하고 자랑하기보단,
'달렸다는 사실' 그 자체를 오롯이 나누는 곳.
시작은 단출했지만,
점점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기 시작했어요.
기록이 없는 대신, 기억이 남는다.
요즘 저는 주 3회, 8km씩 뜁니다. 더 이상 속도와 기록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날의 기분과 체력에 따라,
천천히, 또는 조금 빠르게 뛸 뿐입니다.
하지만 뛰는 동안은 분명히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많은 역할 속에서 해결해야 할 고민들이 조금은 작아지고.
그 시간만큼은,
나를 괴롭혔던 것들이 조금은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달리기는 그렇게,
나를 평가하던 도구에서
이제는 나를 위로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를 위로해 주던 언어를, 글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순간들,
멈추고 싶었던 발걸음,
그럼에도 한 발 더 내딛게 만든 그 무엇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도 나는 뛰며,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