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s challenge
우리 회사에서는 비지시즌 때마다 75일간 걷기 챌린지에 참어할 수 있다. 2월 초에서 4월 중순까지 매일 걸음 수 측정을 해서 하루 평균 만보를 넘기면 참가비에 더해 상금 75불을 받는다. 참가비는 인당 $10인데 하루 평균 5 천보를 못 넘기는 참가자는 참가비를 돌려받지 못한다. 올해 참가자 수는 약 30명. 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활동량이 많은 편이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탑 3 안에 들기는 수월할 성싶다. 1 - 3 등에게는 추가 상금이 주어지므로 매일 열심히 걸음 수를 채우고 있다.
다만 올해는 어쩜 비가 이리 자주 오는지 밖에서 걸을 수 있는 날을 찾기가 힘들다. 게다가 작년에는 집 앞 10초 거리에 프라이빗 비치가 있어서 꼭두새벽이든 밤늦게든 일과 전후에 언제든지 산책을 나갈 수 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딱히 걸어 다닐 만한 공간이 없다. 주변에 학교, 교회, 주택가, 공원 등 인프라도 잘 깔려있고 도로도 널찍하다지만 왠지 여자 혼자 걸어 다니기에는 대낮이라도 좀 꺼려진다. 매일같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동네에 알게 모르게 노숙자들도 간혹 보이고, 경찰차며 구급차며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로 봐서 뭔가 꺼림칙하달까.
미국에서는 1분 거리라도 운전해서 다니는 게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그 고철 덩어리 안에 숨어 있지 않고 맨 몸으로 걸어 다니려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 극단적인 감정인 것 같기도 하다만 이 넓은 땅덩어리의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의 입지라는 게 참 딱한 것도 사실이다. 웬만한 사람들에 비하면 체형 자체도 너무 왜소한 데다가 나 자체도 겁을 많이 먹는 성격이다 보니 모르는 남자가 말만 걸어와도 오만 가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심장이 쿵쾅대는 통에 수명까지 줄어들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 남자 직원들이 퇴근 후 밤 9-10시에 공원에 산책을 나간단 소리를 들으면 우리 여직원들은 남성 특권 산책 (우리끼리 male privilege walk라고 부름) 맘껏 즐기라는 질투 섞인 농담을 한다. 나도 덩치 왕만한 백인 남자였다면 밖이 얼마나 어둡건 날씨가 얼마나 으스스하건 상관없이 내가 편할 때 아무 때나 바깥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닐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근 한 달 걸음 수 통계. 이런저런 고충이 있다 해도 제법 꾸준하게 운동 중이다. 만보 걷기 챌린지가 아니면 일 년 내내 하루 평균 걸음 수가 3 천보 될까 말까 한데 (사실 이건 평소에 귀찮아서 애플워치를 잘 안 차고 다니는 탓이다) 어쨌든 챌린지를 핑계로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어 좋다. 비가 안 오면 주말에는 멍뭉이랑 남편을 데리고 동네 곳곳에 위치한 주립공원을 번갈아 다니며 하루 한 시간씩 걷고 있는데, 집에서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바깥에서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 얼마나 값진지 모른다. 남은 한 달도 마저 잘 해내서 우승 상금을 꼭 차지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