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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향 Apr 15. 2024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인간은 태어나서 저마다의 쓸모를 찾는다. 누구나 생계의 수단이 필요하므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직업을 통해 서로에게 쓰임이 된다. 현재 내 직업은 회계 감사인이다. 일주일에 40 - 52 시간 정도 일을 하고 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고 망각하고 끊임없이 욕망하므로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평생 품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때에 우연히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아 다른 선택을 하게 됐다면 지금의 나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심도 끊임없이 든다.


최근에는 김정현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게 됐는데, "배우는 작품으로 소통하는 시간 동안 행복하다거나 슬프다거나 감정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참 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내게 직업이란 단지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감투 혹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지만 우리는 과연 그렇게 믿으며 살까.


내가 회계사라는 직업을 고른 이유도 단지 세속적인 욕심에 의한 것이었으니 내게 거창한 직업관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이를 테면 내가 사회에서 뭔가 역할을 맡고 있다거나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쓰임이 되고 있다,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도 해본 적이 없다.


내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는 인문계 문과생으로서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세상에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평범한 한국 가정에서 자란 나는 어른들이 추천해 주는 몇 개의 직업군이 귀에 익었을 뿐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 때 최고라 여겨지던 공무원, 아나운서, 변호사, 판사 같은 것들.


나는 암만 생각해 봐도 모르겠더라. 10대 시절 내내 내신 준비며 수능 준비며 공부만 하던 나라서. 과학이나 예체능엔 재능이 없고 언어, 수학 쪽 뇌가 발달해 있는 것 같다는 정도의 정보나 알아냈을 뿐이다. 내가 뭘 좋아하고 무슨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분별해 내는 판단력은 죽어라 외워서 시간 내에 문제나 풀어내는 10년의 연습으로는 길러질 수 없는 역량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성적 맞춰서 대학에 갔다. 수능을 치고 당시에 내가 선택지라고 골랐던 학과는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건대 철학과, 국민대 건축학과 이 정도였다. 셋 중 가장 만만해 보여서 호텔경영을 선택하긴 했지만 나는 졸업한 이후까지도 방향을 몰라서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그렇게 수년을 헤맸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느라 속으론 무너지고 겉으론 깨지기도 했고, 사석에서는 사회생활이라는 걸 따로 배운 경험이 없다 보니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잘해보고 싶어서 애를 쓰느라 오히려 망쳐놓기 일쑤였다. 돋보이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내 인생의 불균형을 보상받기 위해 사람들과의 술자리나 어줍잖은 관계에 매달렸으니 그 관계가 잘 유지될 리 없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한 거였다. 정작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어느 지점을 향해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돌아보니 참 오래도 헤맸다 싶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회계사라는 직업을 두고도 귀히 대해줄 방법을 몰라 아직도 이리 혼란스럽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정말이지,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내 직업이 돈 잘 버는 직업이라서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나를 잡아줄 단단한 소명의식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도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싶다. 내 삶에서, 직업에서 진한 의미를 찾아내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동안에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제는 알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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