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딱 마흔이었다.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가.
늦게 결혼해 늦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체력이 너무나도 바닥을 쳤다.
체력이 떨어지며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은 가족들에게 짜증지수가 확 올라간다는 것
그래서 마흔 살이 되던 해부터 운동을 조금씩 시작하게 되었다.
헬스장에 가서 걷기라도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이
지금은 내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다.
그냥 막 재미있다. 러닝은 러닝대로 근력운동은 근력운동대로 매력이 넘친다.
오전에 아이들이 등교할 때 러닝화 가방을 메고 같이 나와 난 헬스장으로 향한다.
이렇게 루틴을 정해놓지 않으면 늘어지기에
등교 전 청소와 정리를 후다닥 끝내놓고 무조건 아이들이랑 같이 나온다.
러닝머신에서 1분도 뛰기 힘들었던 내가 5년 차가 되어가니
30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 돌이켜 예전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신기하다.
어떠한 목표와 방향도 없이 그냥 매일 나가 걷고 살살 뛰기만 했을 뿐인데.
역시 꾸준함이 답이다.
절대 옆도 앞도 뒤고 돌아보지 않고 나만의 속도대로 천천히 꾸준히 가다 보면
어제보다 1프로 성장하는 나를 맛보게 된다는 걸
러닝을 통해서 삶을 배우게 된다.
4년 동안은 실내용 러너였다.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러닝을 해보고 싶단 생각에 집 가까운 곳에서 하는 러닝수업을 신청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첫 시간.
여러 가지 자세를 배운 후에 마지막으로 실제 달리기 연습시간이다
“평소에 나 달리기 좀 해봤다 하는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시고요,
거의 처음이다 하시는 분들은 저쪽으로 가세요”
호기롭게 손을 들어 이쪽에 섰다.
“이쪽에 서신 분들은 오늘 3Km 달리실 거예요. 요기 보이는 트랙 7바퀴입니다.”
속으로 ‘3킬로요? 흐흐흐 매일 5~6킬로 달리는 나에게 3킬로야 껌이지.’
그것도 맨 앞줄에 서서 나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뛰기 시작했다.
두 줄로 서서 출발.
어라 한 바퀴도 안 됐는데
콧구멍은 점점 커지고,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심장은 빨리 뛰고, 다리는 아프다 하고, 온몸 구석구석에서 나 좀 살려달라 외치고 있네.
결국 4바퀴 뛰고 중도 포기했다.
그때의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 이렇게 끈기 없는 사람이었나.
체력 좋다고 달리기 좀 한다고 자신만만해하던 나였는데
달리기 첫 수업에서 아줌마 인생 최대의 좌절을 맛보았다.
하지만 버텨야 했다.
잘하는 거라곤 묵묵히 버티어내는 것 말고는 없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런 내게 올여름은 거대한 도전이었다.
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가 있나.
그 혹독한 더위에 맞선 여름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뛰던 나는 날고 있다.
겨우 3킬로를 뛰면서도 절반도 못 가 헉헉대던 나였는데,
지금은 어느새 한 번도 쉬지 않고 5킬로를 거뜬히 완주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도 바라던 ‘실외용 러너’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그냥 러너 말고 ‘즐기는 러너’.
이제는 5km 이전의 나와 5km 이후의 나로 구분되었다.
5km 이전의 나는 항상 짜증에 우울한 표정의 체력문제아였다면
5km 이후의 나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는 나로 성장해 가는 중이다.
매일 나를 증명해 내야 하는 피곤한 삶에서
이제는 순수한 나를 돌아보고 나의 성장에만 초점 맞추게 되었다.
꾸준히 달려온 습관 하나로 내 삶은 몇 배 이상의 선물이 주어졌다.
며칠 전 8세 둘째 아이가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어, 엄마는 달리는 명랑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야.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읽고 기록하고 운동하는 거야.”
“그게 꿈이라고??”
아들아, 비웃지 말거라.
이해가 안 되겠지만 꾸준히 하나만 파다 보면
엄마의 삶도 행복하고 그럼 너희의 삶이 더더 행복해진단다.
매일의 작은 성공들을 쌓아 나의 삶을 건강하게 나이 들게 해 주자
건강하게 달리는 명랑한 할머니가 장래희망인 나 너무 멋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