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은 한강 소설
80년 5월 18일. 내가 태어나기 전 해에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알고 있었다. 택시 운전사를 통해 그 시절 광주가 거의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 그 이후 다른 자료들을 통해 군부가 장악하여 시위를 한 사람들을 도청에 가두고 학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극히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고, 그 시절로 돌아가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생생히 보고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적인 상황 묘사,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들,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날 것 그대로 책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라는 우리가 간단히 불렀던 이름 속에는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마음, 상황, 맥락, 생각, 삶이 담겨 있지 않았다. 단순히 ‘희생자’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 그들이 선택했던 결정과 고민, 양심, 의지, 순수함...
그런 그들을 너무나도 잔인하고 처참하게 짓밟았던 군인들, 명령자들, 정부, 나라...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한 채, 상명하복에 따라 수동적인 때론, 적극적인 공격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고 처참함과 슬픔, 암담함과 반성 또한 동시에 느꼈다.
동호, 정대, 정미, 진수, 은숙, 선주와 또 다른 이름이 있었을 사람들 그들 모두가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자, 그 시절이었다면 우리들 중 누군가도 그 사람들이 되었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것. 또한 그곳이 광주가 아닌 마산, 창원, 부산, 대전, 속초… 어디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우리 대신 그렇게 고통받고, 상처 입고, 삶을 마감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저릿하다.
우리가 끔찍해서, 잔인해서, 공포스러워서 외면했던 것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똑같이 가해졌던 역사 속 사실이었고, 장면장면들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1980년 광주에서만이 아닌,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에서, 세계 어딘가에서 있었을 수 있었던 일이고, 지금 현재도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지구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책을 읽는 중간에도 한 번만에 다 읽어 내기엔 너무 숨이 가빠지고, 먹먹한 마음이 들어 조금씩 조금씩 나눠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 부채감, 연민, 복잡한 감정들에 휩싸여 그들이 느꼈을 것 같은 감정들을 함께 느끼며 침잠했던 시간이었다.
아 한 사람의 작가가,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를 느끼기도 했다. 누구나 역사 속에 그 이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듣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그 사건에 대한 이해와 무게감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역사 속 사건들 하나하나가 그 열 글자 이내의 단어로만 기억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생략과 축약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우리가 반복하지 않아야 할 역사,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더 나은 것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그 시절 광주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의 시간에 마음 깊이 묵념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