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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Jun 03. 2024

쉬운 일은 없다...

얼치기 초짜 디테일러의 추억

후기가 올라왔다.


2021년 2월 10일 

[서○○ / 셀토스  / 매우 미흡(-2)]

전면 유리는 와이퍼를 작동하여 다시 닦아야 앞이 보일 정도로 얼룩이 많이 남았고 

슬릭왁스 마무리를 했다고 하기에는 흙탕물 닦은 걸레자국 보여서 

마무리작업을 해주신 건지 모르겠어요


출장스팀세차업을 시작하고 3일째 되던 날의 후기였다.  그즈음의 나는 의욕만 앞서는 얼치기 디테일러이자 세차업자였다. 고객이 앱으로 나를 선택하여 시간을 정하고 카드 결제를 하면 나에게 문자가 온다. 나 역시 앱으로 들어가 주소, 차종 등을 확인하고 예약확정 문자를 전송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예약이 들어오면 예상 소요시간을 생각해서 다음 시간 예약을 막아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동시간 확보가 되지 않는다. 이동시간이 확보가 되지 않으면 지각도착의 연속이 된다. 지각도착이 연속되면 마음은 급해지고, 힘들어도 빨리빨리 하게 된다. 


초보가 빨리빨리 하면 반드시 실수가 따라온다. 그날은 딱 그런 날이었다. 나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빨리! 많이! 하려는 욕심과 시간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지함이 빚어낸 결과다.


위 셀토스 차량은 그날의 6번째 차량이었다. 초보인 나에게 그 당시 그 차는 거대해 보였다. 내부는 하지 않고 외부만 신청한 고객이었다. 외부만 진행하므로 고객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지 않고 비대면으로 시작을 했다.  스팀기를 예열하고, 전후좌우 사진을 찍는다.  스팀기 예열이 완료돼서 스팀호스로 차량을 빙 돌리고, 시작점에서 타월과 스팀으로 닦아낸다. 


아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6번째 차량이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지금 시간은 저녁 7시다. 이 차만 마치면 오늘은 끝이다. 힘을 내자! 마구마구 닦는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닦는다. 살짝 젖어있던 타월은 스팀의 습기를 머금어 축축해졌다. 그래도 그걸로 면을 달리해서 닦는다.


흠뻑 젖은 타월로 자동차 도장면을 닦으면 어떻게 될까? 그건 닦아내는 게 아니라 더럽히는 것이다. 게다가 헤드랜턴의 배터리도 다되어 어둠 속에서 빨리 끝내고자 슥슥 싹싹이 아니라 철퍽철퍽 닦아낸다. 아니 닦아 내는 게 아니라 흙탕물을 도장면에 바르고 있었다. 


드디어 외부 초벌 스팀 세차가 완료 됐다. 뿌듯한 마음을 뒤로하고 물왁스 타월로 도장면에 마무리 미트질을 한다. 밝은 조명을 비춰보면 흙탕물이 그득했을 텐데, 헤드랜턴 배터리가 다되고, 빨리 끝내고 싶고, 이런 여러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흙탕물이 발라진 도장면에 물왁스로 다시 한번 흙탕물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때나 3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때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차하러 가서 차를 더 더럽히고 온 꼴이다. 


세차를 마치고 도구들을 차에 담아 창업 3일 차의 고단함과 뿌듯함을 안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위와 같은 후기가 올라온 것을 보았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대역죄를 저지른 반역자가 된 기분이다.  


덜덜 떨며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 


"제가 이 일 시작한 지 3일 차인 초짜라 그리되었습니다"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 마무리 작업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면 재시공을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6시 어떠신지요?" 

고객님은 

"아! 괜찮습니다. 다음에나 잘해주세요"라고 한다.

 "그래도 고객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했지만 거절한다. 


그 고객은 이후 3년간 단 한 번도 나에게 예약을 하지 않았다. 


2주간의 교육을 받고 실전에 투입되었다. 세차... 누구나 할 수 있고 하는 일이지만, 내차가 아니라 남의 차를  돈을 받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세차가 만만한 일은 아니다. 4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가끔은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그러나 창업 초기의 저렇게 황당한 컴플레인은 없다. 지금도 쉽지 않다. 하면 할수록 어렵다. 


당장 장비부터 구매했다. 헤드랜턴을 3개 구매하고, 도장면을 밝게 볼 수 있는 휴대용 LED랜턴도 큼직한 걸로 구매했다. 타월도 4가지 색상으로 넉넉히 주문했다. 교육은 교육일 뿐, 현장은 스펙터클 하고 잔인하며 변화무쌍하다. 나를 교육했던 매니저는 현장 출신이 아니다. 정석적인 내용만 알려줄 뿐이다. 세세한 건 현장에서 부딪히며 스스로 배워야 한다. 


여러 가지 경우를 겪은 지금도 새로운 실수와 시행착오가 나온다. 다만 얼치기 초짜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대처가 가능하고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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