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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Jun 10. 2024

비포와 애프터 사이

내복을 내리는 결단!

운전석 바닥의 비포애프터


어릴 때는 과정과 결과 중에 과정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과정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실망스럽다면 더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인사대천명! 초라하거나 부실한 결과 앞에서 나는 과연 '진인사' 했는가? 이렇게 물으면 자신 있게 정말 더 무엇을 할 게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 나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라진 것 같다.


눈치를 봐서 결괏값에 대한 중요도에 순서를 매기게 된다. 눈치를 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과정에 대한 투자량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보통 엄마의 말보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지키려고 했다. 왜냐하면 결괏값에 대한 대가와 후폭풍이 아버지의 경우, 좀 더 폭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벌써 단어부터 어머니는 엄마이고, 아빠는 아버지고, 엄마는 말이고, 아버지는 말씀이다.


눈치를 봐서 성공한 경험이 있다. 그 일은 내 평생의 기억에 남아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날은 신체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학기 초로 기억이 된다. 칠판 아래 체중계가 배치되었고, 담임 선생님은 체중계옆 의자에 앉아 아이를 체중계 위에 올리고 무게를 확인했다. 체중계 반대쪽 옆에는 선생님의 책상이 있는데 거기에는 1학년 때 짝이었던 여자아이가 부반장으로서 선생님이 불러주는 아이들의 무게를 적어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체중계 뒤쪽으로 길게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갑자기 철퍽! 하고 남자아이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고 있었다. 이후 선생님은 벗어!라고 아이에게 명령했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더 추웠던 것 같다. 그 추위에 교실은 더 냉골이었으니 내복은 필수였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내복을 입으면 팬티를 입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팬티를 입지 않은 남자아이에게 몸무게를 제대로 재야 하는 선생님이 내복을  벗으라고 하는 중이었고, 아이는 팬티를 입지 않았기에 내복 바지를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아이는 뺨을 수차례 얻어맞고 내복 바지를 내리고 몸무게를 재고야 말았다.


이것은 국민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인권유린의 상황이지만 그땐 그저 일상적인 일이었다. 내복을 벗었던 그 아이는 뺨을 얻어터지며 몸무게를 쟀기 때문에 딴짓을 하던 아이들도 모두 주목하여 앞을 쳐다보게 되었고 교실의 분위기는 정적에 휩싸였다. 아주 나쁜 결과였다.


이제 내 앞에는 3명의 아이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 역시 팬티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얻어터지고 내복을 내릴 텐가? 아니면 과감하게 내복을 내리고 체중계에 올라갈 것인가? 어린 국민학교 2학년 아이는 짱구(실제 내 별명이었다.)를 열심히 굴렸고,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따귀를 맞지 않으면서도 주목을 끌지 않을 방법. 이 상황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체중계 앞에서 내복을 내리는 것이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과감하게 내복을 내리고 체중계에 올랐다. 선생님은 흠칫 놀라는 눈치였지만 조용히 무게를 부반장에게 불러주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내복을 입지 않은 잘못된 과정이 과감한 결단!으로 따귀와 이목집중이라는 결괏값을 피해 간 순간이다. 결국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듯 자존심과 맞바꾼 교활한 결단이었다.


출장세차를 하면 고객은 세차과정을 지켜보지 않는다. 세 차전과 후의 결괏값만이 나의 과정을 증명해 준다. '그래도 이 더운 날씨에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고객은 열 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 까다. 오직 결과만이 단골의 유지와 증가에 보탬이 될 뿐이다. 이제 더 이상 체중계 앞에서 내복을 내리는 교활한 선택 따위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세차의 공정, 클리닝의 공정을 정성스레 수행해도, 아니 결괏값이 내 눈에 보기에 참 아름다워도,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이너스의 결과다. 그러니 과정과 결과 이전에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여러 유형의 고객이 있다


-작은 변화에도 감탄하며 고생했다는 고객

-먼지 세 톨이 액셀패드 밑에 남아있다는 고객

-왁스를 바른 도장면을 손으로 쓱 밀며 체크하는 고객

-군대 내무반 점호하듯이 모든 결과를 체크하는 고객...


사람에게는 인정의 욕구가 있다. 그냥 아는 사이에도 인정욕구가 있는데 고객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열심히 할 의지가 있고, 기술도 있다. 그런데 과정과 결과에 대해 고객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초창기에 가졌던 다음의 생각인

'알아서 열심히 했지만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면 할 수 없지,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같은 진인사대천명이라는 생각이


지금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그것에 좀 더 집중한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고객에게 대충 물어봐서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할 수 없다.

고객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고객님! 특별히 더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라는 순진한 질문을 하면

"뭐 그냥 깨끗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라고 순진한 대답을 한다.


그러나 세차 후 차를 살펴보는 고객은 절대 순진하게 애프터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도 능력이다. 기본적인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주어진 오더에 대한 만족을 높이고, 고객이 느끼지 못하는 니즈까지 건드려 준다면 부가적인 수익창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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