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S클래스의 위엄
지하 3층에 도착해 차를 찾고 세차를 시작한다. 익숙하게 세차 전 사진을 찍고, 차량 내부의 짐을 모두 빼고, 외부부터 스팀을 분사하며 타월로 미트질을 한다. 출고 한 달 된 차라고 하니 타월은 거들뿐 스팀으로 살살 닦아낸다. 뭐 그다지 더럽지도 않다. 다음은 내부다. 내부 구석구석에 스팀을 분사하고 바닥은 흡입력이 센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운전석 바닥, 컵홀더, 시트 주름 부분을 집중적으로 흡입하고, 드디어 운전석 쪽의 뒷좌석을 청소할 때 사달이 났다.
지하 주차장은 천장의 등이 반응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움직임을 감지하면 천장의 등이 들어온다. 그마저도 다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잠시 뒤 꺼진다. 그래서 지하주차장에서 세차를 할 때는 헤드랜턴을 착용한다. 차량 내부는 어두워서 바닥의 오염을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헤드랜턴의 배터리는 오래가지 못해 여러 개를 돌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운전석 뒤쪽 바닥의 시트 아랫부분 먼지를 흡입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흡입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올릴 때, 머리에 두른 헤드랜턴에 무언가에 충격하는 소리를 들었다. 헤드렌턴은 탄력적인 고무 밴드로 머리에 둘러져 있었다. 그 고무가 당겨지는 느낌도 받았다. 무슨 일일까? 머리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운전석 헤드레스트(운전석 머리받침) 뒤쪽에 장착되어 있는 모니터에 충격이 있었던 듯하다.
그 모니터는 리어 모니터라고 불렀다. 사각의 왼쪽 하단에 스크레치가 선명했다. 세차 시공 중 여러 가지 실수를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아 이런 일도 있구나!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진을 찍고 고객에게 문자로 설명한다.
"고객님 저의 부주의로 운전석 헤드레스트 뒤쪽 리어모니터에 스크레치가 남았습니다. 수리 후 금액을 알려주시면 수리비를 송금하겠습니다."
지금은 근무 중인 고객이 추후 확인해 보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세차를 마치고 돌아오며 내 부주의를 자책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사후 관리에 충실해야 할 뿐이다. 더불어 요즘 주의집중력이 떨어졌음을 느끼고 반성을 한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얼마 안 된 초보는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 사고가 나더라도 가벼운 접촉사고나 혼자서 코너를 돌다가 긁히는 정도다. 겁이 나기 때문에 조심하기 때문이다. 신호나 교통안전 규칙도 몰라서 못 지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잘 지킨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날 무렵이 되면 운전에 자신이 붙는다. 사고는 이때 많이 일어난다. 자신을 과신해 과감한 운전을 하고 신호도 눈치껏 어기기 때문이다.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내가 딱 내가 그 꼴이다.
1주 뒤 고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벤츠 공식 서비스센터에 문의하니 리어모니터의 액정만 수리할 수는 없다고 한다. 리어 모니터 자체를 교환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모니터쯤이야 얼마 하겠냐라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그 모니터 가격이 860만 원이라고 한다. 거기에 공임비는 40만 원! 잘 쓰지 않던 단어인 '기함'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머리가 새하얗게 되며 멍해진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시 붙잡고 고객의 문자를 계속 읽어 내려간다. 고객도 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황당해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저렴한 사설 수리업체를 같이 알아보자고 한다.
고객이 예약을 하면 사진으로 된 명함을 문자로 보내드리며, 예약이 완료됐음을 알린다. 명함에 나란 존재는 [업체명]-[내 이름]-[지역명 점장]이라는 호칭으로 기재되어 있다. 나름 호칭을 알려드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나를 여러 호칭으로 부른다. '아저씨', '사장님', '기사님', '저기요', '선생님' 등등이다. 공식적 호칭인 '00 점장님'이라고는 잘 부르지 않는다. 이 고객님은 첫 만남 때부터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세차에 대해 설명을 하면 또박또박 '예. 선생님'하며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고객님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꼼꼼히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보다 더한 부담으로 다가와서 더 열심히 세차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의 실수가 미안하고 죄송한데, 나를 위해 저렴한 곳을 같이 알아보자고 하신다. 공손한 태도와 호칭! 그것은 상대와 본인의 품위를 높이는 아주 좋은 방법인 듯하다.
아이패드 크기의 모니터가 860만 원이라니. 그 돈이면 최신 노트북이 몇 대인가? 뭔가 사기를 당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 결과. 그 가격이 맞았다. 벤츠 S클래스 최신형이라 중고도 없거니와 사설업체에서 수리를 한다고 해도 모니터 가격은 그대로다. 액정만 교체한다면? 동일 크기의 액정은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터치 스크린이라 터치 작동이 안 될 수도 있었다. 여기저기 계속 전화를 돌려본 결과 평택 쪽의 한 업체에서 140만 원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미덥지가 않다. 시중에 자재가 없을 텐데 너무 자신 있게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방법을 찾던 중, 결정적 한방을 맞았다. 사설업체에서 수리를 하면 추후 모니터 문제 발생 시 보증 수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고객의 재산을 실수로 파손했다면 원상복구가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 고객의 선의에 기대어 꼼수 사설 수리로 피해를 남길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영업배상책임보험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고객은 고민이 해결됐다며 다행이라고 하신다. 다달이 나가던 보험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영업배상책임보험을 처음 처리해 보니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다. 자기 부담금(내가 낼 돈) 50만 원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추가비용이 있었다. 총수리비에 따르는 부가세도 내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사가 세금까지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리비 총액이 900만 원이라면, 내가 부담할 금액은 90만 원이다. 결국, 자기 부담금까지 하면 총 140만 원이 나가는 것이다.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내 손과 머리를 탓해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교훈 삼을 수밖에... 이런 일을 겪으면 두 가지 후유증이 남는다. 얼마간 일하기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대한대의 세차 가격이 우습게 보여 근로의욕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과 냉소가 나를 점령한다. 뉴스에서 보던 몇십억, 몇백억은 아무 감흥이 없는데 내가 토해낸 140만 원은 정말이지 아깝다. 140만 원을 벌려면 몇 대의 세차를 해야 할까...
이 또한 지나갈 테지만 이번 건의 후유증은 오래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