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닐 적에, 교육영업관리 업무를 했었다. 일반적으로 학습지 회사라고들 부른다. 학습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볼 때는 선생님이고, 회사에서 볼 때는 영업직원이다. 영업을 잘하려면. 교재를 이해하는 것, 잘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고, 화법, 어프로치, 아동심리지식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회사는 직원인 교사들에게 많은 교육을 한다. 교육회사이니 더욱더 교육을 많이 한다. 교재를 이해하고, 잘 가르치고, 친절히 학부모를 대하다 보면 회원이 늘어난다. 그런데 교육만으로는 좀체 길러내기가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멘탈관리'다.
요즘은 전화상으로 상담을 할 때,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고 안내를 한다. 또한 상담내용이 녹음되고 있음도 고지한다. 감정노동에 대한 보호조치다. 예나 지금이나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 사람들이 고객의 탈을 쓰고 서비스 제공자들을 함부로 대하곤 한다. 큰소리로 항의하거나 막말을 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갑질은 아니다. 몇 마디 말로도 서비스 제공자의 멘탈을 붕괴시키기도 한다.
내가 관리하는 팀의 교사가 수업을 다니는 도중, 울면서 전화가 왔다. 미혼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상냥한 성격과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으로 아이들도, 학모들도 매우 반겨하는 선생님이었다.
"국장님! 저 도둑으로 몰렸어요 ㅠㅠ!"
"진정하시고, 자세히 말해봐요"
"어제 방문했던 집, 어머니께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다녀간 뒤로 집에 있던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졌대요"
"디카가 없어졌는데 왜 선생님을 의심해요?"
"어제 외부인의 방문은 저밖에 없었대요"
"그래서요?"
"사람이 물건을 보면 갑자기 갖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 내일 갖다 달래요!"
"......"
고객은 여러 정황 중에 선생님이 다녀간 것만으로 1년간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를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의심을 넘어 확신을 하고 있다. 심지어 넓은 아량으로 다시 갖다 주면 문제 삼지 않겠단다. 선생님은 이런 꼴까지 겪으며 일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일단 선생님을 달래고 다음 주부터는 그 집에 방문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졌나 봐요?"
"아... 네... 그런데 조금 전에 애들 삼촌이 가져갔다고 연락이 왔네요. 괜히 선생님을 의심했네요. 죄송해요. 이제 괜찮으니까 그 선생님 다시 보내주세요."
그 선생님이 다시 갈 수 있을까? 고객은 뻔뻔하게 의심하고 도로 주워 담았지만, 의심받은 사람은 도로 주워 담기가 힘들다. 죄송하다는 말로 고객은 간단하게 이 상황을 벗어났지만, 섣부른 의심에 선생님의 멘탈은 탈탈 털렸다. 1년이 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방문하는 게 일이고, 그중에는 집에 아이만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언제 또 이런 일을 겪을지 걱정이 되어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한다. 그 당시 관리자였던 나는 우선 그 어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학습지를 그만두게 했다. 그리고 멘탈관리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구매하여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했다.
이런 일들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고객들 중에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며 섣부른 의심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출장세차업을 하는 나도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장소는 아파트 지하 5층이고 차는 BMW 5였다. 여성분이었던 고객이고, 나에게 6번째 세차를 주문했던 터였다. 고객은 매번 차키를 차 안에 두었으니 세차하시고, 그냥 가시면 된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세차를 맡기시니 차량의 오염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세차를 마치고 다음날 전화가 왔다.
"사장님! 혹시 트렁크에서 은수저세트 못 보셨나요?"
"네? 은수저세트요? 글쎄요? 세차를 여러 대하다 보니 잘 기억나지 않네요"
"아... 제차 트렁크에 은수저세트가 있었는데요. 케이스는 있는데 내용물만 없어져서요"
"......"
"네? 고객님 설마 제가 그걸 가져갔겠습니까? 제가 무슨 왕도 아니고 은수저 갖다가 어디다 쓰겠어요"
"그게 좀 가격이 있는 거라서요..."
"하......"
이 고객의 의도는 뭘까?
'만약 내가 은수저세트를 가져갔다면? 고객이 그거 비싼 거라고 말하면? 다시 돌려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물어보는 건? 왜일까?'
출장을 가서 하는 세차라 CCTV도 없고, 있다고 해도 트렁크 속을 비출리도 없는데, 나의 결백을 무엇으로 증명을 해야 할까? 다른 지역 어떤 지점장 중 한 명이 가슴팍에 블랙박스를 달고 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웃어넘겼는데, 이제야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고객의 딱 세 마디 말에 은수저 도둑으로 몰렸다.
"고객님 제 입장에서 정기적으로 세차하시는 고객님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을 하겠습니까?
잘 한번 찾아보시지요"라고 마무리를 했고, 고객도 알겠다고 했지만...
다음날 가맹본사 상담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점장님! 은수저 이야기 뭐예요?"
고객은 나와 전화를 끊고 가맹본사 상담부서에까지 전화를 한 모양이다.
본인 차의 트렁크를 열어본 사람은 1년간 나밖에 없다고...
아! 정말 은수저세트 사주고 싶다.
이후 두어 달 세차 주문을 하지 않으시더니, 최근 들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주문을 하신다.
나도 아무 일 없는 듯 주문이 들어오면 정시에 방문하여 깔끔하게 세차를 하고 돌아온다. 물론 트렁크 내부는 손도 대지 않는다.
세차를 마치고
"고객님 마쳤습니다! 쾌적한 안전 운행하세요!"라고 문자를 보내니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이 돌아온다.
막상막하의 멘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