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엔진룸은 깨끗합니까?
초등학교 근처를 걸을 때, 마주 오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그렇게 귀여운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게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아이들과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는데 깜짝 놀랐다. 대화의 내용은 모르겠고, 그렇게 귀여운 입술로 욕을 반쯤 섞어가며 말을 하고 있었다. 서로 싸우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의 수준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 가니 비극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말 욕 중에는 부모나 생식기 관련 욕이 많다. 욕의 뜻을 알고도 저렇게 무심히 사용할 수 있을까? 나도 친구들을 만나면 부지불식간에 욕을 섞어가며 말을 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나는 보통 한 달에 80~90대 정도의 차량을 세차한다. 정말 다양한 차종의 세차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자동차 별로 천차만별의 오염도를 겪었다. '이 차는 정말 끝판 왕이다. 이보다 더 더러운 차는 없겠지'라고 생각되는 차를 만나도, 다음 달에는 종류를 달리 한 더 심각한 차를 만나게 된다. 차량 외부의 매끈함과 내부의 청결도는 차주의 평소 습관과 관계가 깊다. 깨끗한 차인데도 매월 정해진 날에 부르시는 고객도 있고, 1년 전에 불러서 세차할 때 정말 애먹었는데 1년 뒤 또 부르시는 고객도 있다.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다.
"고객님! 설마 1년 전에 저 불러서 세차하신 이후 처음은 아니시죠?"
"아뇨 저는 1년마다 하는데요?"
매월 부르시더라도 차가 깨끗한 건 아닐 수 있다. 마음껏 어지럽히고 세차는 아웃소싱으로... 그러니 나 같은 사람도 먹고사는 세상이다.
다양한 차량, 다양한 성격의 차주가 있지만, 공통된 특징도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차량의 보닛을 열어 엔진룸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녀불문이지만 여성고객의 경우가 더 심하다. 엔진룸을 왜 청소해야 하는지부터 궁금해하신다. 뭐 이 정도는 약과다. 차량의 상태를 보고
"고객님 앞유리 와이퍼 교체 시기가 많이 지나서 고무가 거의 닳았네요. 교체하셔야겠어요"라고 설명하면,
"아! 그거 교체해야 되는 거예요?" 하고 답도 하니깐
진한 파란색 '미니'라는 깜찍한 차량 세차 의뢰가 들어왔다. 젊은 여성 고객님께서 운행하시는 차량이다. 외관이 무척 귀엽고, 계기판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설계되어 있는 차다. 내외부를 스팀으로 세차하고, 차량 내부의 세균을 죽이는 바이러스 케어 및 연막소독까지 진행했다. 차량 내부에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혹시나 하고 보닛을 열어봤다. 역시나 기름때 위로 하얗게 먼지가 층을 이루고 있었다. 고객님께 보여드리자 기겁을 하신다. 본인 차에 이렇게 더러운 부분이 있었나 하는 표정이다. 고객님의 그 표정은 마치 앞서 말했던 귀여운 초등학생이 그 어여쁜 입술로 욕을 섞어 말하는 순간을 본 내 표정과 닮았다.
엔진룸은 왜 청소해야 할까? 단지 더러워서? 물론 더러우면 청소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재를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철 엔진룸의 온도는 최고 300도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물론 전기차의 경우는 아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차량은 내연기관 차량이다. 이렇게 고온으로 오르는 엔진룸 내부가 기름때, 낙엽, 먼지로 층을 이루어 퇴적되어 있다면?
차량의 화재는 확률싸움이 아니라 시간싸움이 된다.
화재가 나지 않더라도 이물질이 가득 찬 엔진룸은 운행 시 엔진이 과열되어 주변 부품의 성능을 저하시키거나 망가뜨린다.
엔진룸을 청소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공기의 질 때문이다. 자동차 내부의 공기는 창문을 열지 않을 경우 자동차 전면부 그릴을 통해 엔진룸을 휘몰아친 뒤 자동차 내부로 들어온다. 엔진룸을 거쳐 공기가 유입되는 것이 싫다면 운전석에 앉아 오른손을 뻗어 구부러진 화살표가 그려진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 버튼을 누르면 자동차 실내 공기는 내부에서만 순환한다. 다시 누르면 내기순환이 해제되고 외기순환이 되어 엔진룸을 통해 공기가 다시 들어오게 된다. 그런데 이걸 누가 신경을 쓰고 운전을 할까? 그러니 외기순환 상태에서 엔진룸이 오염됐다면? 매일매일 엔진룸의 새하얀 먼지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 먼지들은 아마도 황하강 유역이나 고비 사막에서부터 출발하여 내 차의 엔진룸에 정착한 미세먼지일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주선이 날아가고, 쳇 GPT가 질문만 해도 영상을 만들어주는 세상인데, 왜 인간의 몸 내부를 한번 뒤집어서 소독해 주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담배 피운 폐에 찌든 니코틴을 닦아내고, 복부에 켜켜이 쌓인 노란 지방도 긁어내서 참 좋을 텐데...'
아직 그런 의료서비스는 없어서 우리 몸의 뚜껑을 열고 눈으로 쳐다보며 클리닝 할 수는 없지만, 자동차는 가능하다. 방법도 쉽다. 보닛 뚜껑을 열어서 우리 몸의 오장육부를 보듯이 쳐다보며 청소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겉만 깨끗하게 하지 말고 자동차 뚜껑도 열어서 청소해야 한다. 화재예방과 호흡기의 건강을 위한 것이니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