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둘째의 2학기 중간고사 날이다.
나도 하루지만 학부모 시험 감독으로 참여했다.
오늘은 역사, 국어, 수학을 치고 내일은 과학, 영어를 친단다. 이틀에 걸쳐 5과목 시험을 치는 것이다.
시험 치는 날임에도 학교에서 급식을 준다니 너무 좋았다.
한 끼라도 학교에서 해결하고 오면 그날은 마음이 한결 편하다.
시험이 끝나고 울면서 전화가 왔다.
수학 시험 점수가 없단다. 엄청 시험을 못 본 모양이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했던 터라 우는 소리를 들으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솔직히 그뿐이었다.
첫째의 고등학교 시험을 겪으니 둘째의 중학교 성적에는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평준화 지역에서 과학고, 영재고, 자사고 같은 학교를 갈 것도 아니니 중학교 성적이란 잘하면 좋고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자기 성적에 관심이 없냐고 서운해하기도 하지만 엄마가 너무 관심 있는 것도 아이한테 피곤한 일일 것이다.
이 맘 때의 아이들의 성적은 엄마의 성적표가 된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정말 좋겠지만 내가 뭐라 하지 않아도 이미 학교, 학원, 친구, 스스로에게 성적 스트레스가 있을 텐데 거기다 나까지 말을 보태고 싶진 않다. 아이들 공부를 봐줄 수 있는 실력이 이미 나에게서 사라진지 오래다.
어쩌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못 하지도 않기에 그냥 지켜봐 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짜 못했다면 공부보단 다른 길을 함께 찾아보자며 공부는 어느 정도 포기했을 테고 공부를 정말 잘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하겠지.
공부를 잘한다는 건 세상 사는데 큰 힘이 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내 삶이 바뀌는 일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자존감, 도전할 용기, 주변의 너그러운 시선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인생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공부가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 나이 19살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
그때의 수능 점수는 그 당시 내 인생의 전부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 중 하나였고 그것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40이 넘은 지금의 나에겐 한 때 내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던 그 점수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었냐고 어느 대학을 졸업했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볼 순 있지만 그것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한 때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그것이 계속해서 내 인생의 전부로 남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일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대신 세상 사는 시야가 넓어지고 삶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는 긍정적인 면도 생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인 첫째의 성적은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언젠가는 흘러갈 시간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것이 엄마의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