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석

아이들이 6개월치 용돈을 받는 날.

by 지니운랑

마트에 가서 강냉이, 고구마스틱, 소라형 과자, 커피, 물, 졸음방지 껌을 샀다. 이번 추석 장시간 운전을 할 남편을 위한 준비물이다. 동네 운전만 겨우 할 수 있는 나이기에, 내가 운전을 하면 옆에서 남편이 더 신경이 쓰인단다. 나에게 운전대를 맡길 바엔 아무리 막혀도 차라리 휴게소에서 한숨 자고 가잖다.


공식적으로 추석, 설날만 시댁&친정을 가는 우리는 아무리 멀고 바빠도 명절 방문을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이것도 내년부턴 아이들 중간고사로 힘들 것 같다. 추석은 고등학교 중간고사기간과 무조건 겹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올해는 14일 토요일 16시에 출발했다. 일요일 아이 학원 하나를 포기하고 수업 내용을 영상 링크로 받기로 했다. 자기 주도가 잘 되어 있는 아이들은 인강으로도 충분하고 학원보다 인강의 내용이 더 알차다고 하던데 그 아이가 우리 아이는 아닌 모양이다. 부산에 도착하니 21시 10분. 예년에 비해서 엄청나게 빨리 도착했다. 작년에는 새벽 1시에 출발해서 오전 10시에 도착했었다.

귀경길은 17일 20시 창원에서 출발하여 18일 새벽 2시 20분에 도착했으니 이번 추석은 나름 선방한 듯하다. 더 있다가 오고 싶었지만 19일 목요일 회사, 학교를 가야 하는 일상의 피곤함이 두려웠다. 게다가 18일에도 고등학교 학원은 시험기간이라 운영을 하신단다. 간다고 성적이 오를 것도 아니지만 다들 학원에 가는데 혼자 놀기란 괜스레 두렵다.


이번에는 연휴 앞날이 길어서 친정을 먼저 갔다. 시댁은 장사를 하셔서 명절 전이 후보다 더 바쁘시다.

친정에 가면 부모님과 인근에 사는 동생네를 만난다. 가끔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데 각자 명절을 보내자면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하루 내려가고, 하루 부모님이 일구시는 텃밭에 가서 농장체험을 하고 그리고 다음 날 시댁으로 갔다가 하루 밤을 자고 하루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면 올해 추석도 끝이다.

창원에는 시부모님과 아이들 고모가 계신다. 부산에 일가친척이 없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친척들이 창원과 마산에 거의 계신다. 그 덕에 시외할머니댁에 가면 아이들이 오래간만에 친인척들 사이에서 부쩍거리며 놀 수 있다. 일 년에 2번 있는 그 행사가 좋았는데 사촌들이 결혼 함에 따라 점점 보기가 힘들어져 조만간 그 시간도 사라질 것 같다.


시댁과 친정에 내년 추석은 아이 중간고사가 겹치면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5월 어버이날이나 여름방학 때 내려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 추석은 무려 10일간의 연휴가 기대되는 날이다. 그럼 아마도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버님이 장남이시고 남편도 장남이라 며느리로서 명절이 싫은 날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어머니께서 나에게 제사를 물려주지 않으시고 자기 대에서 마무리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고 제사도 간소화하였으며 나의 최고의 변명은 멀리 산다 것이다. 친정은 아빠가 막내여서 원래 제사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명절이 되면 양가에 얻어먹으러 간다. 명절 내내 집에서 심심하게 지내는 것보단 내려갔다 오는 게 더 재미있고 좋다. 고속도로만 막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이들에겐 명절은 6개월치 용돈을 한꺼번에 받는 날이다.

1년에 2번, 설날과 추석에 용돈을 받아 6개월치 예상 생활비를 제외하고 통장에 넣는다. 아이들의 씀씀이가 크지 않고 명절에 용돈을 넉넉히 받는 편이라 평소 용돈을 주지 않아도 생활이 되어서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부디 이대로 가다가 20살이 되면 너희가 벌어서 알아서 용돈으로 쓰렴.

keyword
이전 28화자전거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