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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용 May 20. 2024

[홍시생각 16] 조선(朝鮮)을 국가로 인정하면 된다

한조(韓朝)관계 정상화를 위한 제언


먼저 CBS 노컷뉴스 5월 19일자 기사를 보자. 

밑줄과 색깔 글자는 필자가 편집한 것이다. 


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6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중국 방문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남북에 대해 과거에 사용했던 '북남관계' 대신 '조한관계'라는 표현을 썼다. 


조 장관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당부한 것에 대해 "한국이 아무리 흑백을 전도하며 잔머리를 굴리고 말재간을 피워 피해자 흉내를 낸다고 하여 이제 더는 그에 얼려 넘어갈 사람이 없으며 조한관계는 되돌려 세울 수 없게 되어있다"고 비난하는 대목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18년 2월 6일 '올림픽 이후 드리운 검은 그림자'라는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해외 언론보도에서 언급한 '조한관계'라는 말을 인용해 사용한 적은 있지만, 북한 당국이 직접 사용한 것은 이번 박 부상의 담화가 처음이다.


북한이 과거에 사용한 '북남관계'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닌 민족내부의 특수 관계에 기초한 표현이라면, '조한관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 들어 남북에 대해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한 것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연말전원회의에 이어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해상 국경선을 포함한 영토조항 신설 등 2국가 관계를 반영한 헌법 개정을 주문한 바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동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2국가 관계를 반영하는 후속조치는 하나하나 실행 중이다.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철거, 애국가 가사 수정, 한반도 중 북한만을 담은 지도인 '행정구역도'의 제작 등이 대표적인 후속조치이다.(하략)

https://www.nocutnews.co.kr/news/6146638?utm_source=naver&utm_medium=article&utm_campaign=20240519100927


상당히 공들여 쓴 기사다. 인용한 대목은 다 사실과 부합한다. 

나에게 교정을 보라면 한 가지 손보고 싶다.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다. '남한'이 아니라 '한국'이다.

기사 첫줄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은 '박명호 조선 외무성 부상'이라고 해야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 표기하지  '남한 외교부 장관'으로 표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

총강 1. 우리는 대한민국(약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조선)으로 나누어진 남과 북의 현실을 인정하며, 상호존중과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상대방의 국명과 호칭을 있는 그대로 사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출처: 한국기자협회(https://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4)

1995년 8월 15일 제정,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지난해 말, 올 초에 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이 '남북 2국가론'을 내놓으면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말한 대목을 두고 조선이 민족 동질성을 부인했다느니, 통일 포기를 선언했다느니 말들이 많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차분히 되짚어보면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다.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라는 말은 틀렸다. 민족은 태생적인 것이지 후천적으로 규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연해주, 동북 3성, 한반도 등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한민족(韓民族)은 비록 고려인, 조선족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모두가 하나의 민족이다. 핏줄은 원래부터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편입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동질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조선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은 미국에 대한 관점이었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 대다수는  숭미(崇美)를 넘어 공미(恐美) 의식에 찌들어 있지만 조선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체구가 크니 표적도 크다, 한번 싸우자, 붙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어벌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탕탕 내뱉고 있었다. 


"일없습니다"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대다수 한국인은 기분 나빠한다.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저러면 십중팔구 무시당한 느낌을 받는다. 그게 "괜찮습니다"라는 걸 안 뒤에야 오해가 풀렸다.   


그렇더라도 방문자 대다수는 "똑같네"를 연발하곤 했다. 수십년간 격폐돼 살다보니 어쩔수없이 서로 달라진 점이 있을 것이라 걱정했지만 막상 가보니 먹는 것, 입는 것, 세시풍속 지키는 것 등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2000년대 초 평양 갔을 때  고려호텔 뷔페 메뉴에 풋고추, 상추, 된장이 있었다. 주체사상탑 엘리베이터 지하층 표기가  'ㅈ'으로 돼 있었다.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니 더 이상 동질관계가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가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이것은 딱부러지게 맞는 말이다.

조선이 반국가단체라고 박박 우기는 한심한 者들이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차고 넘친다. 그것도 방귀깨나 뀐다는 '오피니언 리더'라는 작자들이다. 무슨 말을 해봐야 설득도 되지 않을 이들에게 한 마디만 하겠다.  유엔 회원'국'이라고 하지 유엔 회원'단체'라고 하던가. 1991년 한국과 조선은 유엔 회원'국'이 됐지 유엔 회원'단체'가 된 게 아니다.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국가가 아니라고? 한국과 조선은 유엔에 동시가입한 뒤  세 달쯤 뒤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서로가 국가로 인정한 바탕 위에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를 전제로 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것이다. 


상호 국가 인정→국가이지만 특수관계에 상호 합의→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순서로 일이 진행된 것이다.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는 한국과 조선 양쪽이 서로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조선이 합의하지 않는데도 특수관계를 고집하는 것은 일방의 떼쓰기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이 통일포기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정벌'이라는 말을 썼다. '한국이 도발해온다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그 경우 정벌하겠다고 한 것이다. 국가 대 국가 관계로 파악하다 보니 '분단 조국 통일'이라는 말이 부적절해 '정벌'을 골랐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김 위원장이 사실상 무력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한국의 선(先) 도발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살펴봐야 할 게 있다. 조선은 '괴뢰 한국', '제1 적대국', '교전국'으로 한국 앞에 수식어를 붙여 지칭하고 있다. 이는 적대국, 교전국이 아닌 자주적 한국과는 평화통일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러니 통일 포기 선언이라는 해석은 섣부른 것같다.



한민족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여러 나라를 경영해 왔다. 

민족사를 살펴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국이었던 때도 있었고 2국가로 나뉘어 살던 때도 있었으며 하나의 국가로 지낸 적도 있었다. 

한국과 조선 2국가 시대가 전혀 낯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의 예를 봐도 하나의 민족이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뤄 사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한국과 조선이 그 어디에서도, 어느 때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3국시대에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완전한 교전국 관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사상 동족끼리 전쟁으로 수백만명이 사상한 적은 없었다.  



한국과 조선은 그간의 수많은 접촉과 교류, 합의서에도 불구하고 적대관계의 해소에는 실패했다. 

그 결과로 현재 맞닥뜨린 한반도 상황은 6·25 전야를 방불한다. 6·25전쟁은 적대감으로 똘똘 뭉친 한국과 조선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상대방을 소멸시키겠다는 무력흡수통일 정책의 결과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의 도발을 전제로 무력 흡수통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조선, 역시나 조선의 도발을 전제로 무력 흡수통일 기회를 노리고 있는 한국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다. 그것이 공갈, 협박으로 끝날 것같지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상대방이 먼저 도발하기를 기다리는, 합리와 이성으로써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상대방 행위를 도발로 판단하면 곧바로 전쟁 불씨가 튀게 돼 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적대관계 해소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조선에 핑계대고 조선에 미룰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조선에 미칠 한국의 영향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실정에서 조선한테 이래라저래라 해봐야 하나마나한 말공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조선은 그간 몇 차례 헌법 개정으로 '적화통일 야욕' 같은, 한국으로부터 늘쌍 지적받았던 문제의 조항을 이미 없애버렸다. 


그러나 한국은 제헌 헌법에서부터 지금까지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유지하고 있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조선은 '반국가단체'일 수밖에 없고, 한국의 '주적'일 수밖에 없다. 



헌법의 영토조항을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거부하고 함부로 국토의 일부를 점령한 불법집단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이 보고 있는 대로,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일 뿐이다. 하지만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로 헌법과 국가기구를 갖추고 있으며 , 유엔에 가입하여 국제적으로 독립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엄연한 현실과 동떨어진 영토 조항은 삭제해야 옳다는 주장이 많다.

(<안녕 헌법>,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공저, 2009년, 49쪽) 


평화통일 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 헌법 4조도 문제이다. 

이 조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는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조선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가치체계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책 수립은 가능하겠지만 이를 조선을 상대로 '평화적으로' 추진한다는 게 가능할까.     


이들 조항을 그대로 두고 한조 간 화해, 교류, 협력이 가능할까.

이들 조항을 그대로 둔 채 화해, 교류, 협력 운운하면 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  


헌법 제3조, 4조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

그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 땅에 또 다른 전쟁 참화를 막는 첫걸음이다. 

이른바 '북한 핵문제'를 보는 시각을 교정해주는 출발점도 될 것이다. 


마침 제6공화국을 마감하고 7공화국을 열기 위한 헌법 개정 필요성이 조국혁신당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단임제냐 중임제냐, 내각책임제냐 대통령중심제냐 같은 것도 논의가 필요하지만, 목전에 다가온 전쟁 참화를 막기 위해서는 헌법 제3조 및 4조를 삭제 또는 개정하는 문제를 꼭 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일부에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한국의 통일정책 기조가  무엇인가? 

흡수통일, 무력 흡수통일이 정책 기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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