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용산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을 상대로 첫 국정브리핑을 진행했다.
그가 국정브리핑 형식으로 현안을 설명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계획은 이날 오전 급박하게 결정됐다.
대통령실은 브리핑 시작 8분 전에야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일정을 공지했고 내용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극도의 보안을 지킬 정도의 중대사안임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보고 내용은 바람빠진 풍선, 김 빠진 맥주 같았다.
윤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며 국민들에게 직접 동해안 물리 탐사 결과를 보고했다.
윤 대통령의 우측 옆에는 모니터가 설치됐고, 모니터에는 동해안 석유·가스 매장 추정 지점이 표시됐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 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일정 복귀를 위해 4분 만에 이석했고, 질문은 따로 받지 않았다.
브리핑장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603076200001?section=search 참조로 필자가 재구성함)
아래 그래픽은 한국일보에 보도된 것이다.
대통령 브리핑 내용이 바람빠진 풍선 같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원유, 천연가스의 포항 또는 울산 앞바다 매장 '가능성'은 이미 전부터 알려진 것이다. 또 실제로 채굴, 생산한 적도 있다. 그러니 극도의 보안을 지킬 사안도 안 되고,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보고를 할 정도로 대단한 뉴스거리도 아니다.
위 그래픽 아래 부분 '동해 가스전'은 울산 남동쪽 58km 지점이다. 정확한 명칭은 '동해-1 가스전'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 개발한 한국 최초의 가스전이다.
1998년 7월 한국석유공사가 탐사 시추에 성공했다. 2004년 11월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17년간 천연가스 4100만 배럴(원유 환산시), 초경질유 390만 배럴을 생산했다. 2021년 말 매장량이 고갈돼 가스전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1976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장.
박 대통령은 "포항 앞바다에서 원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깜짝 발표 순간 기자회견장은 크게 술렁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국정브리핑'에서 발표했다. 박은 포항 앞바다, 윤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 박은 원유 발견, 윤은 매장 가능성이라고 각각 언급했다.)
박 대통령이 얼마나 감격했던지 직접 '원유'에 불을 붙여보고, 맛을 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원유는 1975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포항 영일만 인근에 시추공 3개를 뚫다가 2공구에서 발견한 드럼통 한 개 분량의 검은 액체였다.
원유 발견 소식으로 포항과 주변 지역이 들썩거렸음은 물론이다. 이 바람에 피해를 본 주민이 생겨나 송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 윤 대통령 국정브리핑에 대해 경북지역 매체들은 산유국 꿈이 현실화한 듯이 대서특필했다. 중앙지들이 대체로 '신중한 대처'를 주문한 것과 비교된다. 오마이뉴스 6월 4일자, <경북신문들 보니 "경상도는 벌써 산유국 다됐네"> 참조)
그러나 원유로 보고된 이 물질은 나중에 경유로 확인됐다. 경유는 원유를 정제하여 얻는 제품이므로, 원유 상태에서 경유가 발견될 수는 없다. 따라서 포항 앞바다에서 경유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시추 작업이 중단됐고 박 대통령의 "원유 발견" 발언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원유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을 발표하기 직전 그의 지지도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긍정 평가는 21%로, 현 정권 출범 후 최저치였다.
부정 평가는 70%로, 현 정권 출범 후 최고치였다.
이는 한국갤럽이 5월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로, 5월 31일 언론에 공개됐다.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도를 끌어올리려고 첫 국정브리핑감도 안 되는 것을 급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경우와 비슷하게 '별것 아닌 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일로 포항과 주변 지역민들이 송사를 벌인 것까지 닮지 않길 바랄 뿐이다.
박 대통령의 1976년 연두기자회견 때면 윤 대통령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었을 게다. 청소년기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통령이 앞장서 퍼뜨린 산유국 꿈에 가슴 부풀었을 것이다. 1980년에는 가수 정난이가 '제7광구'라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용돈까지 쥐어줬다던가. 윤 대통령과 거의 동년배인 나는 지금도 이 노래 곡조를 기억한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산유국 꿈에 취했던 때가 있었다.
군부독재정권 시절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던 산유국 꿈은 어느 결엔가 바람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들고 말았다. 나는 그 과정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동년배인 윤 대통령은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영토 어딘가에 원유,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가능성과 실제 생산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간의 경험으로 이런 초보적인 상식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을 법도 하건만, 윤 대통령은 첫 국정브리핑 사안으로 택했고, 철저히 보안을 지키면서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고는 질문도 받지 않은 채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이걸 두고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가 막히는 건, 이미 2주 앞서 천공이라는 자가 '산유국'을 얘기했다고 한다. 천공에 빙의됐다는 항간의 속설이 낭설이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걸 보면 윤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니다고 할 밖에.
2024년 6월 4일 국무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상정·심의·의결했다. 조선의 오물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등이 그 이유였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가 이뤄지면서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체결 5년 8개월 만에 전면 무효화됐다.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확성기 방송 등 대조선(對朝鮮) 심리전,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 훈련, 조선의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해지게 됐다.
이로써 긴장고조, 우발적 무력충돌을 막는 안전판이 사라졌다. 한국군과 조선군이 언제 어디에서 충돌을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9·19 군사합의는 지난해 11월 21일 조선이 정찰위성을 쏴 올렸을 때부터 절름발이 신세가 됐다.
조선측이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인 만리경 1호를 탑재해 발사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밝히자 한국측은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중대 위반이자 안보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도발’이라고 주장했다. 정찰위성 발사 다음날인 22일 윤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안'을 최종 재가하면서 11월 22일 오후 3시부터 9·19 군사합의 1조 3항의 효력이 정지됐다. 효력정지된 1조 3항은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동부지역은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40km, 서부지역은 20km까지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번에 폭탄 투하 훈련이 진행된 필승사격장은 동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30km가량 떨어져 있다.
그러자 조선측은 11월 23일 9·19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며 이 합의에 따라 지상·해상·공중에서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들을 즉시 회복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합의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조선 국방성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정찰위성 발사는 자위권에 해당하는 정당한 주권행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2024년 1월 8일 9·19 군사합의에 따른 지상 및 해상의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북한조선의 위반 행위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4년 6월 5일 강원도 태백산 인근 필승사격장.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미군 B-1B 전략폭격기가 5일 한반도로 날아들었다. 한미 공군 전투기와 연합 훈련을 하면서 태백산 인근 필승사격장에 합동직격탄(JDAM)을 투하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B1-B 전략폭격기는 미국이 보유한 장거리 다목적 전략폭격기로, 현대 군사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고도 비행능력으로 적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으며 레이더 반사 면적이 작아 탐지 회피 능력이 우수하다. GPS 및 INS(관성 항법 시스템)를 이용해 높은 정확도의 목표 지시 및 무기 투하가 가능하다.
합동직격탄 JDAM(Joint Direct Attack Munition)도 GPS와 INS를 이용하여 목표물에 정밀하게 유도되는 폭탄이다. JDAM의 사거리는 탄두의 종류와 신관의 설정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약 24~30km이다. JDAM은 다양한 항공기에서 운용이 가능하며, 높은 정확도와 파괴력으로 인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B-1B 전략폭격기의 한반도에서의 JDAM 투하 훈련은 2017년 이후 7년 만이다.
2017년은 근래에 한반도 전쟁 위험이 최고조로 올라갔던 해이다. 조선은 그 해에 가장 강력한 핵실험을 실시했고 미사일을 15차례 발사했다.
2017년 9월 3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실시한 제6차 핵실험은 조선의 역대 핵실험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됐다. 규모 5.7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발사한 미사일 중에는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이 포함돼 미국과 긴장감이 고조됐다.
미국은 조선의 6차 핵실험이 진행된 9월에 B-1B 랜서 전략폭격기를 조선 동해 공역에 출격시켜 무력시위를 벌였다. 또 조선의 핵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고, 조선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대조(對朝)제재를 강화했다.
전쟁 위기감이 치솟자 서울에 외국 기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호텔 방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말까지 나왔다. 주민들의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라면, 생수 등 비상식량과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2017년 전쟁 위기는 2018년 조선과 미국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소됐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비록 말잔치에 그치고 말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
2017년 전쟁위기는 조선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를 문제삼은 미국이 만들었다. 2023년 9·19 군사합의를 절름발이 신세로 만든 것은 조선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문제삼은 한국측 입장이었다. 2024년 9·19 군사합의를 완전 무효로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풍선이다.
GPS교란이 B1-B 전략폭격기, 통합직격탄(JDAM) 등 중요무기 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9·19 군사합의를 파기할 정도의 심각한 사안은 아닐 듯 싶다.
오물 풍선이 군사합의를 깬 주범이라니 실소가 터진다. 애초에 한국쪽에서 '오물 전단'을 날리는 도발을 하니까 조선쪽에서 '오물 풍선' 날리기로 맞대응했으니 한국쪽에서 도발을 중단하면 조선도 맞대응을 중단할 것이다.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그런데 윤 정권은 가까스로 고안해 낸 무력충돌 방지 안전판을 해체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9·19 군사합의 준수에 온갖 노력을 경주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합의서를 무효화하고 상호 무력충돌을 유도하는 길로 나선 윤 정권의 행보는 도저히 납득 불가이다. 이대로 가다간 우발적 또는 고의적인 무력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윤 정권은 왜 9·19 군사합의를 깨지 못해 안달일까. 기어이 피바람을 불러오고 말겠다는 저 심보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또 천공인가. 천공에 빙의됐든 안 됐든, 한갓 풍선 날리기를 피바람 부는 사람잡이로 몰아가는 그 광기(狂氣)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윤 정권의 비정상성은 집권 초기부터 계속돼 왔다. 지금 며칠 사이에 목도하고 있는 비정상성은 이성과 합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그저 광기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미친 지도자는 하루빨리 끌어내려야 한다.
하루빨리 윤석열을 끌어내려야 참극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