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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작가 Apr 01. 2024

나 혼밥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점심시간에 혼밥 하니 세상 외롭더라

한 때 인터넷에 떠도는 혼밥레벨 테스트가 있었다. 레벨 1부터 만렙까지 측정하는 것이었는데, 평소 혼밥을 즐기던 나는 만렙도 가능할 것이라 자신했다.


[혼밥레벨 테스트]

레벨 1: 편의점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 2: 학생식당이나 푸트코트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 3: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세트 메뉴 먹기

레벨 4: 분식집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 5: 중국집, 백반집 등 일반 음식점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 6: 유명한 맛집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 7: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 8: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혼자 밥 먹기

혼밥 만렙: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아니나 다를까. 당시 다른 동료들은 레벨 3,4 정도 되었는데, 나는 레벨 6까지 가능했다. 예상대로 나는 혼밥을 잘하고 즐기는 편이었다. 이 레벨테스트를 하던 당시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좋은 동료와 상사가 있었고, 일 자체도 매우 보람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장이었다. 아직까지도 아련한 추억으로 되새김질할 만큼 좋은 기운을 심어준 곳이었다. 내가 아무리 혼밥레벨 6이었어도 혼밥을 할 일이 없던 곳이었다. 밥정이 무서운 것이라 했던가. 매일 점심 맛있는 것을 찾으러 다니며 동료들과 끈끈한 정을 쌓아나갔었다. 


이후의 회사에서도 혼밥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내가 혼밥을 하는 경우는 출장을 갈 경우, 저녁에 집에서 가족과 밥을 먹지 않고 외부 일정이 있는 경우 정도였다. 그러나 자취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매일 저녁은 혼밥을 하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넷플릭스를 보며 식사를 하는 그 시간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만족스러운 저녁시간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혼밥을 하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기회가 생기면 누구보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오히려 이전 직장에서는 가끔 점심에 혼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면 차라리 혼자 먹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그 혼밥 기회가 찾아올 때면 나는 이때다 싶어 별다방으로 향해 여유롭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쉼을 누렸다. 


이처럼 나는 혼밥을 잘했고, 그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매일의 점심시간을 혼밥으로 지내니 세상 외로울 수가 없었다. 나의 로망이었던 판교의 현직장에서는 매일 점심 구내식당에서 혼밥을 하고 있다. 유일한 복지라고 할 수 있는 사내 요가 프로그램이 점심시간에 진행된다는 점이 내가 혼밥을 하는 이유라고 대외적으로 포장을 해본다. 나는 요가를 하지 않기에 공식 점심시간에 맞춰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하지만 요가에 참여하는 다른 팀원은 요가 이후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오거나 다른 간식들로 배를 채운다. 가끔 요가를 가지 않는 날에도 우리는 함께 식사를 잘하지 않기에 나의 혼밥이유가 꼭 요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혼밥하는 이유를 타인에게 말하기엔 합리적인 사유이다.


입사 첫 주, 그리고 둘째 주까지만 해도 혼밥을 하지는 않았다. 새로 온 사람을 어찌 처음부터 혼밥 하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곳의 일상적인 문화에 맞춰진 순간 어느덧 매일 점심을 혼자 먹고 있었다. 직장에서의 점심 혼밥이 처음인 나는 이 상황이 매우 서러웠다. 가끔이 아닌 '매일' 혼자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이리 외로울 줄이야. 오죽하면 나는 식판을 들고 항상 사람들이 삼삼오오 많이 앉아 있는 곳 옆으로 가서 먹는다. 나처럼 혼밥 하는 사람들 옆이 아니라 화기애애 식사를 하는 사람들 옆 말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귀동냥하며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나의 외로움을 조금 덜어주었다. 밥은 혼자 먹고 있지만, 한쪽 귀는 커져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속으로 공감을 하기도 하고, 맛집 정보를 들을 때는 그곳이 어디냐 위치를 묻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혼밥의 장점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양껏 음식을 담을 수도 있고, 함께 먹는 이와 속도를 맞춰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며, 정적을 깨기 위한 의도적인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 점심 이후에 시간을 온전히 내 쉼을 위해 누릴 수도 있다. 뉴스 기사만 보아도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혼밥을 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점심시간 혼밥이 이리 외롭단 말인가.


그 이유를 혼자 찬찬히 되짚어 보니, 바로 내가 사람과의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회사에 와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회사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교류하고 안부를 공유하는 사람이 1명만 있었어도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는 것이 뭐가 대수란 말이냐. 오히려 혼밥의 장점을 매우 잘 누렸을 것이다. 그런데, 현 회사에서는 내가 하는 말이 하루 통틀어 딱 두 마디이다. 


안녕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입에 거미줄이 쳐질 지경이다. 누군가는 이런 회사생활을 원하고 있고 이상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의 나한테 만큼은 이곳의 조직문화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개인사업자인데 공유오피스를 사용하는 이 느낌. 이럴 거면 재택근무를 하지 왜 굳이 나는 사무실로 출근하는가 하는 느낌을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지울 수가 없다.


입사 전과 후에 말이 달라진 연봉 산정기준에 무너진 마음이 조직문화로 인해 한 번 더 가라앉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일 하는 것이 재밌고, 회사 생활이 즐거웠던 적이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이 힘든 적이 없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요즘 매일 아침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 같은 기분이다.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흐릿한 눈을 가지고 회사로 간다.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갈 때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는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 무리 속에 스며들어 그렇게 여느 평범한 직장인처럼. 


SNS에 나오는 직장인들의 모습들이 정말이지 내 모습이다. 출퇴근 외의 내 삶이 없고, 주어진 것만 하게 되며, 금요일이 제일 신나고, 일요일 저녁만 되면 기운이 빠지는 그런 평범한 모습.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위안을 얻으며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또 살아나가고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작지만 소중한 월급이 매달 내 통장으로 들어오기에 그걸로 버티고 버티며 지내본다. 그래도 이 회색빛 같은 내 삶에 오색찬란한 빛이 비칠 것이라 희망은 놓지 않는다. 다시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렇게 이 사회를 개선해나가보길. 사회까진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게 되길 마음 한편 도화지에 작은 그림을 그려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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