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 고시 뛰어들기

드디어 대학교 4학년. 임용 고시에 뛰어들 시기이다. 임용고시를 이야기하자면 크게 1차 시험과 2차 시험으로 나뉜다. 1차 시험은 필기시험으로 교육학과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면 되고, 2차 시험은 수업시연과 심층면접 그리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시험 유형을 준비하면 된다. 보통 11월까지 1차 시험에 올인하고 12월, 1월에 2차 시험을 준비한다. 이 임용 고시에 뛰어들었다. 사실 4학년 기간에는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n수생들보다 적다. 수업도 남아 있고 졸업 논문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스스로 지켰던 약속은 9시에는 무조건 도서관에 도착할 것, 점심은 먹지 않고 6시 30분까지 자리를 지켜 공부할 것. 이 4학년 기간 때도 셰어 하우스에서 친구들과 살고 있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곧 중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해서 하루 날 잡고 새벽까지 놀았었다. 야식을 먹고 밤새 100 빙고를 하며 놀았다. 한 새벽 5시쯤 마무리하고 자려고 할 때쯤 친구들이 나보고 "내일은 조금 늦게까지 자. 너 매일 공부해서 하루쯤 늦잠 자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을 이해하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똑같이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첫 번째 시험에서 1차를 통과하지 못했다. 내 점수를 확인하고 커트라인 점수를 확인했는데 딱 1점 차이였다. 아까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한번 더 도전하는 것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전화를 걸었고 덤덤하게 상황을 설명했는데 엄마 아빠의 위로에 눈물이 났다. "취업하는데 1년쯤 더 공부하는 거 괜찮아~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 그 말에 또륵 눈물이 났다. 그래도 이내 괜찮아졌고 마음을 가다듬고 시험을 복기했다. 그런데 복기를 한 이후로 나 자신한테 너무 화가 났다. 자괴감이랄까. 실수가 너무 많았다. 어떻게 이걸 실수할 수 있는 거지? 실수만 담아도 고득점을 맞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자괴감에 자려고 눈만 감으면 그 실수들을 곱씹게 되었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고 괴로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다시 공부할 수밖에. 그래도 재수생은 졸업도 했기에 공부할 시간이 많았고 아직 자신감이 있었기에 다시 공부에 몰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 열심히 하자! 작년보다 더 열심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임용고시의 정식 이름은 "중등 교사 임용 후보자 선정 경쟁시험"이다. 완전한 상대평가로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른 재수생들은 3월부터 공부에 시작하지만 나는 1월에 바로 시작했다. 매일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공부했다. 나의 좌우명이 "꾸준함이 재능이 될 수 있기를!"이다. 남들보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꾸준히 할 수는 있다. 성실히. 이 좌우명 하나로 이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


시험 날까지 한 달쯤 남았을까.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다가 빠각! 소리가 났다. 그 당시 김말이 튀김을 잘 못 씹은 소리인 줄 았았다. 그런데 그게 어금니가 깨지는 소리였다. 치과는 매번 다니던 곳에서 치료받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해서 본가에 가서 치료받았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해서 공부할 것들을 챙기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치료가 길어져 약 4일 정도를 평소처럼 공부하지 못했다. 시험과 가까운 시기에 공부에 더 몰두하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안 좋았다. 이러나저러나 임고 날짜는 다가왔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두 번째 느꼈다. 후회 없이 시험을 봤고 1차 발표 날을 기다렸다. 발표 전날 밤 긴장 때문에 잠을 전혀 자지 못했다. 이상하게 결과를 보기 전부터 눈물이 나고 있었다. 클릭을 하기 전에 '어떤 결과든 겸허히 받아들이 준비가 되어있어.'라고 말했지만 정말 마음이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결과는 1차 합격이었다! 이때 룸메 언니와 함께 결과를 봤는데 함께 얼싸안았다. 또 언니가 갤럭시 워치를 손목에 채우고 내 심장 박동 수를 쟀다. 121 bpm이 나왔다. 초흥분상태였다.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벅찼다.


그래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아직 2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3일 정도 쉬고 2차 공부에 다시 몰입했다. 개인적으로 2차 공부가 훨씬 힘들었다. 정말 교육 현장을 고려한 답안을 생각해야 했다. 또 2차는 면접이기 때문에 계속 말하는 연습을 했어야 했다. 그러니 매일매일 친구들과 면접 스터디, 수업 시연 스터디를 했다. 마지막 날까지 준비하고 2차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순간순간들이 아쉬웠다. 수업시연은 만족했으나 수업 나눔과 심층면접이 아쉬웠다.

2차 결과를 기다렸다. 보통은 조기발표가 난다고 해서 발표가 나기 이틀 전부터 심장이 옥죄어 오는 느낌을 오전 10시마다 느꼈다. 이번 해는 당일 날 발표가 났다. 그런데 정말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발표가 나기 전날 예비교사 커뮤니티 카페에 '곧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만날 사람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정말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출근했을 때 교무실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먼저 알아볼 것, 내선 전화 사용하는 방법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글 중에 담임교사로서 처음 학생들을 마주할 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 주제는 면접 기출문제와 연습문제에도 종종 나오는 질문이었다. 면접을 연습할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답변을 했는데 막상 발표 전날에 이 질문을 읽는데 막막했다. 그리고 아주 찰나 내가 준비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발표가 나기 전 날 밤에 걱정과 불안이 내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 친구와 언니들이 날 억지로 재웠고 발표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다 같이 발표 화면을 보는데 내가 합격인 줄 알았다. "황제펭귄님은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이 문구에서 '황제펭귄님은 합격자'까지가 파란, 진한 글씨체이고 '명단에 없습니다.'가 검은색 작은 글씨체이다. 파란 글씨만 보고 합격인 줄 안 것이다. 합격인 줄 착각한 상태로 얼싸안고 신나 했긴 했는데 이때에도 찰나 '나 지금 기쁜가? 왜 생각만큼 기쁘지 않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다시 화면을 보게 되었고 불합격인 것을 확인했다. 처음 든 감정은 억울함. 합격 컷을 봤는데 모자란 점수는 1점 남짓이었다. 화가 났고 이상하게 웃음도 났다. 반나절을 웃다가 울고 화내다가 울고. 피곤했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


부모님이 본가로 올라와서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더 이상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본가로 이사했다.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자신감은 남아 있었다. 이제 2차 경험도 있으니 더 잘할 수 있어. 그리고 2차에서 했던 실수들을 고치고 싶어서 2차 면접을 복기한 후 면접 책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피드백도 받았다. 피드백을 받으니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도 더 생겼다. 그래서 또 달렸다. 작년보다 더 열심히. 한 번은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다. 아마 시험이 2달 정도 남았던 시점이었다. 진지하게 119를 불러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한 독감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약을 먹고 버티며 공부했다. 약기운에 잠이 올 것 같았지만 잠을 이겨내는 건 대학 생활 내내 훈련해 온 것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약기운이 없어지고 안압이 높아질 때쯤 다시금 약을 먹고 공부했다. 또 약을 먹고 잠을 자다가 약기운이 없어지면 숨쉬기가 어려워 그때부터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냈다.


이렇게 공부했는데, 당연히 1차는 또 합격이었다. 이제 또 2차가 남았다. 지난번에 2차 점수가 많이 아쉬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력을 쏟았다. 그룹 스터디도 2개를 잡았고 현 교육 정책에 관한 정보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했다. 이번에는 아침밥만 먹고 밤이 될 때까지 공부와 그룹 스터디만 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2차 시험을 준비하니 4kg이 저절로 빠졌다. 오히려 좋았다. 드디어 2차 시험날. 시험을 보고 나올 때 정말 아쉬움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을 준비한 대로 잘 말하고 나왔다. 시험 결과는 목차 부산여행에서 공개하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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