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 책의 큰 주제와는 맞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큰 사건 중 하나였기에 적어 본다. 이 사건도 룸메이트와 있었던 일이었는데, 대학생활 막바지로 취업 준비하며 예민한 시기였다. 그러다 한 룸메가 평소와는 달리 나와 다른 룸메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어 갔다. 기분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아마 피곤한 하루 일정과 취업으로 예민해진 탓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쨌든 그래서, 아주 가끔 대화의 물꼬를 틀고자 말을 걸면 대답을 하기는 하지만 툭툭 던지는 듯한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나는 이것이 상대가 기분이 안 좋으니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석하여 이후 몇 마디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룸메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가 말을 더 깊이 해주길 바랐었던 것이다.
어떤 한 사건의 발단으로 내가 먼저 "요즘 왜 그러냐? 대화 좀 하자"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이제 와서 무슨 대화냐?"라고 답장이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장 집으로 갔고 대화를 시도했는데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날 피했다. 그런데 날 더 짜증 나게 했던 것은 그러는 와중에 자신의 불만은 전부 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못했고 감정싸움밖에 안 한 것이다.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다. 진흙탕 싸움을 하며 그 속에서 내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 본질적인 룸메의 불만은 '본인의 감정을 깊게 물어봐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싸워본 적도 없고, 화해를 하지 않고 싸움을 중단한 적도 없어서 그 충격이 좀 오래갔었다. 약 3,4일 정도. 한창 하루에 8시간씩 공부를 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정말 집중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러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남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아니'라는 답변이 나왔다. 나는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퉁명스러운 대답을 한 것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도 기숙사에 살았는데, 그때 룸메에게 "오늘 표정 안 좋아 보이는데 왜? 무슨 일 있어?"라는 대화를 종종 하며 서로 의지했었다. 소울 메이트였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완전한 나의 잘못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라리 완전한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면 사과했으면 마무리되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으니 해결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자꾸 마음속엔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모자를 시기인 이때에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져서 집중을 하나도 못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쨌든 상황은 아주 형식적인 화해로 마무리했고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관계에 삐그덕 조짐이 보이면 사건이 더 커져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대화를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 덕분이었을까? 이후 인간관계에 대한 사건이 또 발생했는데 원만하게 대처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친구가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더 기분이 상하기 전에 대화로 감정과 상황, 상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친구는 나의 답변을 깔끔하게 받아들이진 못했으나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내 알 바 아니다. 또, 한 번은 스터디원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준 상황에서도 더 격한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대화로 풀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에서는 '대화'로 잘 해결한 상황만 적었지만 사실 순간순간의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친한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줄 때는 감정도 가감 없이 표현한다. 그런데 한 번은 이 모든 사건을 다 알고 있는 친한 친구가 마지막 일까지 듣고, "너 인간관계 레벨 업한 거 같아"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룸메와 크게 싸우고 나서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라고 생각했는데, 인간관계를 레벨 업하기 위한 단계였나 보다. 그 덕분에(?) 지금은 인간관계에서 이전보다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