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마음도 지친 데다가 거의 2시간이 걸려서 퇴근하면 생각보다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5월부터 공부량이 훅 줄었다. 게다가 점점 의미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쉬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20대가 취업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쉬기만 하면 주변에서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가족들이 일하고 있냐? 공부하고 있냐? 그래서 어쩌려고? 등 몸은 편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더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질문한다. 나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국을 잠시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능한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가장 서쪽으로 아일랜드로 갔다. 그런데 이곳에 있어도 한 번 무너진 마음은 다시 회복되기 어려웠다. 천천히 잠식된 이 우울은 여기서도 지속되고 있다. 더블린은 비가 참 자주 오는데, 그날 아침에 우산을 쓰고 '우울한 것도 이젠 지겹다.'라고 생각했었다. 종종 공원에 앉아서 내가 모은 돈을 모두 쏟아서 이곳에 왔는데 제대로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고 있고, 180도 다른 경험을 하고 있지도 않고,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 와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다가 한국 돌아가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면 가슴이 답답해져서 억지로 생각을 끊어야 할 정도로 괴롭다.
평소에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상황이 있다. 나는 이것을 "빨간 버튼"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미 최악인 상황에서, 이것을 선택해도 최악이고 저것을 선택해도 최악인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보통은 그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차피 최악인걸, 그냥 아무거나 빨리 선택해서 그냥 해버리는 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을 것 같다. 뛰어가면 15분 정도 늦을 거 같아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택시가 하나도 잡히지 않는다. 이때, 선택지는 2가지이다. 첫 번째, 고민할 시간에 냅다 뛴다. 둘째, 계속 택시가 잡힐 때까지 기다린다. 언제 잡힐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기다려본다. 선택지 두 개 모두 약속에 늦는다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이런 경우 보통 나는 빨리 한 가지를 정하고 체념한다. 이 예시는 약한(?)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 나의 상황이 딱 이 꼴이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하면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미래가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불확실성에 또 놓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채로 예전만큼의 열정과 노력을 쏟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젠 도전하는 것이 겁이 난다. 또 다른 선택지는 유학을 하는 것이다. 애초에 외국에서 유학을 해보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그런데 돈이 없다. 있던 돈도 지금 아일랜드에 오느라 모두 써버렸다. 최악의 상황에서 선택지 두 개가 있는데, 빠르게 경정을 내릴 수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스트레스를 너무 준다.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적 '남극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참 좋아했다. 좋아한 이유는 펭귄이 정말 웃기다. 걷다가 힘들면 철퍼덕 누워서 배밀이로 가기도 하고, 옆에 친구가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날개로 쳐서 넘어뜨리기도 한다. 길을 가다가 바다코끼리가 있으면 밟고 가기도 하고 절벽에서 굴러 넘어져도 멍청한 표정은 유지한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서기도 한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장면은 아니었지만 제일 좋아하는 펭귄 장면이 있다. 길을 잃어 뉴질랜드 어느 땅에 도착해서 멍청하게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펭귄 본인은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헤엄쳐서 갔을 것이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알 수 없는 곳, 본인도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른다. 그 모르겠다는 표정이 다 드러난다. 그냥 그 펭귄표정이 웃겨서 좋아했던 장면인데, 지금은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길을 잃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이곳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브런치 스토리에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 교사로서 일할 때 학생들 고민을 들어주고 가볍게 이야기 나누며 상담을 했던 것이 보람으로 남아 있었다. 교사에 대한 미련이 남은 걸까 싶어서 전자책을 도전했다. 학생들이 많이 하는 질문을 떠올리며 그 답변을 엮어 전자책을 썼다. (다른 플랫폼에서 판매 중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남은 기간 동안 차근히 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