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불안정한 시기를 겪는 학생들의 정신적 지지자가 되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또한 내가 교사로서 행할 행동들이 학생들이 성인이 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은 내가 이 교육경쟁을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학생 때, CCC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는데 그 시간 때에 사람들이 술을 참 많이 사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술을 팔고 있는 자신이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알바를 찾아보려고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웃었다. 나 또한 웃었다. 자신이 술을 만드는 사장도 아니고, 억지로 사람들에게 술을 먹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자기 일을 하는 것뿐이기에, 기분이 나쁠 이유도 없고 다른 일을 찾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상황이 그 친구의 상황과 겹쳐 보였다. 나는 교사로서 나의 일을 하면 될 뿐이다. 스트레스로 학생들이 스스로 죽기를 원하고 또는 남이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안타깝지만 내가 조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작년부터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이 길이 맞는지, 이 길을 내가 원했는지조차 모르겠다.
혼자 마음속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을 하며 배운 것들이 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은 잘 하지만 그리 성적이 아주 높지는 않은 학생이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과학이 어렵고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통합과학의 단원 중 선캄브리아 시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생물들과 그 진화를 배우는 부분이 있다. 수업이 끝난 후, 그 친구가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며 이런 것을 더 배우려면 2학년 때 무슨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물어보았다. 정말 그 학생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단원의 시험을 매우 잘 봤다. 다른 단원은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이 단원에서는 성적이 잘 나와서 "공부 열심히 했나 보다~"하며 칭찬을 해줬다. 그런데 학생이 공부는 똑같이 안 한 것 같은데 다 기억이 났다고 말했다. 이 학생을 보며 본인이 흥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재미있으면 저절로 기억하게 되고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깨달음도 있다. 과학 동아리 지도도 맞고 있었는데, 그 동아리에서는 학생들이 주로 화학과 생명과학 실험을 많이 했다. 실험을 지도하는 것은 많이 어렵지 않았다. 그 실험을 찾아보면 실험 과정과 유의 사항, 관련 이론 등은 충분히 지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실험 후 폐수 처리였다. 폐수는 산, 염기, 유기계, 무기계로 구분해서 처리하게 되어있다. 나는 화학 전공이 아니기에, 정확히 이 폐수는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아리가 있는 날에는 화학 선생님께 가서 폐수 처리에 대한 부분은 여쭤보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옆 동아리 학생이 폐수 처리에 대해 물어보면 또 헐레벌떡 화학선생님께 달려간다. 내 이러한 모습을 보며 과학 선생님이 되면 내 전공만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능하면 전반적인 과학 지식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계속 공부해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학생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뀐 것도 있다. 내가 학생일 때는 머리 길이는 자유였으나 염색과 펌은 하면 안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허용한다. 심지어 탈색도 허용하는 학교도 있다. 한 번은 담임선생님께서 코로나에 걸리셔서 부담임인 내가 조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반에는 탈색을 하고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내 은연중엔 그 학생의 태도가 불량이고 예의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 학생이 조례가 끝나자마다 조퇴증을 써달라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매우 예의 바랐다. 공손하게 조퇴증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조금 놀랐다. 왜 나는 당연히 이 학생이 질 나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여느 학생과는 달리 머리 색이 다르고 수업을 듣지 않아서? 이때를 통해 학생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학생다운 모습"이라는 것은 없다. 나의 편견을 깨준 사건이었다.
의미를 잃어가는 와중에도 배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은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아주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