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민족성이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나라의 정치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과 같은 민족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그 나라 사람만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 말이다. 아일랜드에 있으면서 다른 나라의 민족성을 잘 모르겠으나 한국인은 분명 이 민족성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꼭 이야기 나오는 한국인은 '정'이다. 한국인은 분명 '정'이라는 민족성이 DNA 어딘가에 유전자로 존재하는 것만 같다.
몇 가지 사례가 있었다. 외국에 거주하면서 아프면 통증과 함께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이 나라의 병원체제도 잘 모르고 아픈 것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더욱이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ㅜㅜ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픈 상황마저 낯설다. 한 번은 어학원 친구가 감기에 걸렸었다. 감기에 걸려서 하루는 학원에 나오지 못했고, 다음 날은 학원에 오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친구가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어도 아파서 결석한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친구한테 물었다.
"너 어제 아파서 학원 안 나온 거였어?"
"맞아..ㅜ"
"지금은 괜찮아?"
"아니..."
"약은 먹었어?"
"약은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네..."
"어째... 오늘도 쉬지... 지금 줄 수 있는 약이 없네...."
이 대화를 들은 선생님이 나보고 "역시 코리안 스타일~, 코리안 정~"이라고 말했다.(선생님은 대구에서 4년 동안 살면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뭐가요?"라고 물었더니, 한국인은 안위를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위로해 주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본인도 그게 좋았다고 한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했을 뿐인데 뭔가 외국인 친구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또 다른 것은 내가 이곳에 살면서 묘하게 정 없다고 느낀 것이 있다. 바로 뭐든 요금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결제가 아닌, 4주에 한 번씩 결제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월세와 핸드폰 요금제가 있다. 월세도 월에 한번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4주에 한 번씩 돈을 지불한다. 또, 핸드폰도 28일에 한 번씩 탑업하고 있다. (선불 교통카드처럼 돈을 먼저 충전하고 28일 동안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묘하게 정 없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처음엔 마지막주 토요일에 월세를 내기 시작했는데, 28일 간격으로 월세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셋째 주 토요일에 지불해야 하는 날이 온다. 그러면 묘하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1년을 살게 되면 13번 월세를 지불하게 된다. 고작 이틀씩을 포용해주지 않은 것이 묘하게 기분 상하게 만든다.
이제 어학원 수업도 4주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시간을 함께 보낸 외국인 친구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면 뭔가 마음이 허전하다. 몇 달밖에 살지 않았는데 이곳에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학원 끝나면 선생님들한테는 무슨 선물을 주지? 가능하면 한국느낌이 많이 나는 걸로 선물하고 싶은데..." "많이 친해진 멕시코 친구한테는 무슨 선물을 주지?" "홈스테이 아주머니께는 무엇을 드릴까?" 하며 고민하고 있다. 더블린에서 만나 친해진 한국인 언니도 다음 주에 어학원이 끝나서 함께 고민하고 있다.
어학원의 특성상 정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영어공부를 하러 오고 가고, 정말 짧게 왔다 가기도 한다. 어학원에서 장기간 공부했든, 짧게 1,2주 있다가 가든 그들은 쿨하게 안녕~ 인사하고 잘만 돌아가던데, 왜 우리 한국인들은 뭐라도 선물하고 싶어 하고 한바탕 울고 돌아가는 걸까? 이게 아마도 한국인에게 있는 '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