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평범한 하루였다. 평범하게 어학원에 갔고 평소와 다름없이 무작위로 짝지어진 반친구와 스피킹을 하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질문을 서로 해야 했다. 나에게 온 질문은 나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내 나이를 말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아니잖아. 너 나이 2살 더 많잖아. 나 기억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맞다. 한국나이로 평생을 살아서 처음 어학원에 온 날에 한국나이로 나를 소개했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도 만 나이로 살기로 했고, 여기는 아일랜드이니 만 나이로 대답했을 뿐이다. 그래서 설명했다. "아 맞아. 그건 한국나이고 여기 나이로는 ㅇㅇ살이야."
친구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왜 한국나이가 다른지 질문이 들어왔다.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친구의 반응이 살짝 격양되어 나도 차분하지 못한 상태로 대답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이걸 영어로 설명하려니 아주 마음만 급해졌다.
"임산부가 아이를 10달 동안 배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는 1살 더 카운트해."
"그럼, 1살만 더 많아야지 왜 2살이 더 많아?"
"너네는 생일이 지나면 한 살 카운트하잖아. 우리는 새해가 지나면 카운트해."
사실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내뱉었을 뿐이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선생님이 친절하게 칠판에 판서하며 설명해 주셨다. 감사하게도 이 선생님은 한국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에 2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친구가 이해했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다시 불을 짚였다. "한국은 나이에 따른 호칭이 중요해. 본인보다 나이가 많으면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
다시 친구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그럼 이름 말고 뭐라고 불러?" "sister, brother." 사실상 언니, 오빠, 형, 누나라고 말해야 하는데 정확히 매칭되는 영어 단어가 없다.
그런데도 믿을 수 없었는지, "우리 반에 헬른(한국인 언니) 있었잖아. 너 헬른을 뭐라고 불러?"
"언니." 대답을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 그래서 나 지금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어색해."
친구들은 다른 문화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반친구가 이 날을 기억을 하고 있었나 보다. 하긴 문화가 다른 것이 생소하니 기억에 남을만하다. 설명한 나도 기억에 남는 일이니. 그런데 그 친구는 한국은 2 버전의 달력이 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즉, 음력과 달력.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때 반친구가 "새해 때 다 같이 한 살이 많아지니 축하할만한 날이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근데 우리는 1월 1일 날 휴일이기는 한데, 그날 축하하지 않아. 우리 명절은 2월쯤이야."
이 말에 다시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과 함께 "왜?"라고 질문이 들어왔다.
"달력이 2개 있어. 그래서 다른 달력의 1월 1일 날에 명절을 보내"
"두 달력이 뭐가 다른데?"
"우리 모두가 쓰는 달력은 태양의 움직임을 따르잖아. 또 다른 하나는 달의 움직임을 따르는 달력이야."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나 보다. 혼돈 그 자체임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래서 핸드폰에 캘린더를 보여주면서 "여기 작은 숫자 보이지 이게 그 다른 달력의 날짜야."
충격 반, 호기심 반. "그럼 년도는?" "년도는 같아!!!!"
나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면서 웃기기도 하면서 꽤나 재미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짝지어진 반친구와만 이야기 나누고 있었는데, 반 친구들 모두에게 흥미롭고 충격적인 주제였는지 어느새 나는 반 전체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당연히 살아온 나라가 다르니 문화도 다르고 한국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날의 사건은 그것을 몸소 체험한 날이었다. '이걸 모르는구나 싶으면서도 당연히 모르지' 하는 마음이랄까. 아일랜드에 와서 조금은 섭섭하고 외로웠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서 정말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반 친구들이 남미 출신인데 정말 잘 모른다. 그런데 나도 이제 이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남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 날 어떤 질문과 어떤 반응은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과 반응도 모두 호기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