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길을 걷다가 만나거나, 알베르게에서 만나거나. 그래서 산티아고는 혼자 가더라도 외로움을 느끼진 않는다. 혼자 걷는 사람들끼리 늘 그렇게 말한다. '혼자 왔지만 언제나 혼자는 아니야.'
이 말처럼 서로 만나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사람, 신기한 사람들을 만났다.
"너는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나는 생장! 앤 유?"
"나는 집 앞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오스트리아!"
집 앞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사람, 혹은 바티칸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는 사람 3분을 만났다. 그분들은 걸은지 60일 차 정도라고 말하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왜 길을 걷기로 결심했어요?"
"나도 모르겠어! 이건 내 인생의 프로젝트야!"
큰 이유는 없고 그냥 걷고 싶었다는 분, 이 긴 거리를 걷는 게 인생의 프로젝트라고 말씀하셨던 분. 그 말을 했을 때 장난기 어린 소년 같은 얼굴이 뭔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거창한 이유 없이도 내가 걷고 싶다면 걷는 거지.'
(좌)오스트리아에서부터 온 분과 먹은 피자 (우)그곳의 알베르게
길을 걷기로 결정한 이유
내가 만났던 스웨덴 할머니와 캐나다 할머니는 자신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동안 충분히 누리지 못한 자연을 마음껏 누릴 거라고 하셨다. 이런 축하 느낌 이외에도 이 길은 사연 있는 사람들이 마음의 짐을 길 위에 내려놓기 위해 걷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 온 친구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시련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왔다고 했다.
미국에서 온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사별하신 후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하셨다. 또 기억에 남는 네덜란드 남성분이 있다. 알베르게에서 빨래를 한 후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느닺없이 와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이 길, 순례길 위에서 돌아가셨어. 다음 마을로 가는 길목에 cross가 있는데 그 근처에서 돌아가셨어. 그 당시에는 화도 나고 순례자들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내가 여기 오니까 순례자들이 길을 걷는 것도, 나의 어머니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정말 멋진 곳이야. 마지막까지 잘 완주하길 바랄게. 안녕~"
그분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길을 걸으며 그 cross를 찾았다. 이야기를 들었을 땐, cross가 갈림길을 말하는 건지, 십자가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길을 걷고 십자가인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십자가가 그분의 어머니를 기리는 십자가일 것이다. 그분은 근처에서 차박을 하고 계셨다.
(좌)초콜릿을 먹다가 듣게 된 이야기 (우)다음날 아침 십자가를 발견한 후 그곳의 거리
모두가 기억에 남는 밤
하루는 이탈리아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알베르게를 이용했다. 저녁식사도 직접 하신다는 말씀에 커뮤니티 저녁식사를 신청했다. 이탈리아인이 만들어 주는 저녁이라니! 식당에 갔더니 나 혼자 동양인 여자, 나머지 세 분은 캐나다, 브라질, 덴마크에서 오신 아저씨셨다. 나이, 성별, 국적 모든 게 나와는 동떨어진 느낌이어서 저녁식사 '커뮤니티'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저녁식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길을 걷는 모두가 그들만의 이유를 가지고 온다. 저마다 그 무게는 다 다르다. 가족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할만한 그런 이유. 그런데 그런 마음들은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더 솔직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상하게도 그날 밤, 그 알베르게에서 모두가 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꾸밈없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식사 도중에 어김없이 나온 그 질문, "왜 이 길을 걷기로 결정했어요?" 이 물음에 캐나다 아저씨께서 먼저 이야기를 하셨다. 캐나다 아저씨는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두 달 전에 생모를 찾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는 것과 어머니가 왜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등 짧은 몇 달 사이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혼란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느끼는 이 기분이 분명 싫은 감정이 아닌데 설명하기 힘든 낯선 감정이라고 하셨다. 길을 걸으며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산티아고를 걷기로 결정했다고 하셨다. 식사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이야기에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온 질문. "너는? 무엇이 널 이곳으로 이끌었어?"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산티아고를 걷고자 한 이유. 가야 할 길을 몰라서. 길을 걸으며 생각하면 혹시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을까 하여 걸었다. 그런데 왜 나는 길을 잃었을까? 그 이야기를 이탈리아 바질 파스타를 먹으며 하게 되었다.
"저는 교사였어요. 제가 근무할 때, 학생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제가 가르치던 학생도 아니어서 괜찮은 줄 알았지만, 안 괜찮은 거 같아요." "그 이유도 학업 때문인지, 또래문제인지 뭔지 잘 몰라요. 그렇지만 한국 학생들이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럼 가르치는 것 자체는 좋아?"
"가르치는 건 좋아해요. 학생들 하고 지내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왜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누가 그렇게 공부하라고 하는데?"
이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공부를 강요하고 있지?
"아마도 부모님들?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 푸시해요."
"사실 나도 그랬어요!" 나도 모르게 나온 이 말에 지금까지 내가 괴로웠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랬다. 내가 왜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경쟁하는지, 시험 1점에 목숨을 걸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뭐 나는 안 그랬어? 더하면 더 했지 경쟁 안 했어?' '그리고 몰랐어? 우리나라 입시 경쟁이 심한지 교사되기 전에 몰랐어? 다 알았으면서, 다 알고도 교사하겠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는 건지.' 나의 이중적인 모습이 가장 힘들었던 것이다.
내 마지막 말에 캐나다 아저씨가 해준 답변이 위로가 되었다. "어렸을 적 네가 그들과 똑같았어도 교사가 되어 바라본모습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어. 네가 교사여서 그래." 이 말이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충분히 고민될만해.'라고 말해준 것만 같았다.
이후에도 브라질, 덴마크 아저씨의 이야기도 들었다. 참 이상하다. 이 날 밤은 모두가 스스로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깊은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았고, 그것이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다. 와인 2병을 다 마시고도 아쉬워서 맥주를 더 마시고 마지막에 사진도 찍었다. 가족사진처럼 나왔다. 모두가 '이 밤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알베르게
이탈리아 사장님이 만드신 저녁식사
(좌)브라질 아저씨가 추천해 준 책 (우)다음날 알베르게를 떠나기 전
산티아고 순례길 Tip_알베르게 알베르게는 크게 공립 알베르게, 사립 알베르게, 도네이티브 알베르게가 있어요. 공립 알베르게는 비교적 비용이 저렴해요. 침대도 많아서 많은 순례자들이 이용할 수 있답니다. 대부분 예약을 받지 않아요. 사립 알베르게는 천차만별이에요. 비용도 저렴한 곳도 있고 비싼 곳도 있고. 침대도 6개로 적은 곳도 있고 60개로 많은 곳도 있어요. 대부분 예약을 받아요. 도네이티브 알베르게는 기부제 형식으로 이용되는 곳이에요. 어떤 곳은 저녁과 아침도 줘요. 보통 숙박만 제공하는 경우 10유로, 숙박과 식사를 모두 제공하면 20유로 정도 기부하는 게 예의라고 해요.
알베르게마다 비용과 시설의 차이가 크니, 구글 맵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는 것을 추천해요. 또 저만의 추천은 적은 인원의 알베르게입니다. 한 번쯤은 적은 인원을 수용하는 알베르게를 이용해 보세요. 아마 그들과 식사도 하고 친해지며 특별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buen cami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