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직접 지었다고?
태국 치앙마이 빠이 시골길을 걷다가 마주친 회색 시멘트 담. 내가 예약한 숙소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담벼락이었지만, 그 안에 상상도 못 했던 반전이 있었다. 신들의 전시관 같기도, 정원 같기도 한 이 공간. 아니, 집 전체가 사원이나 다름없었다. 기업이 지었다고 해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 모든 것을 단 두 사람이 20년에 걸쳐서 만들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숙소 호스트 데이브는 40년 전부터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가 빠이에 처음 왔을 때는 사방이 허허벌판이었다. 사람도 건물도 없지만, 자연 풍경이 마음에 들었던 그. 마치 여기가 본인의 마지막 정착지라는 듯, 땅까지 사버렸다. 그리고 굳게 다짐했다. — “난 사원을 좋아하니까, 아예 사원을 지어야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건축 지식은커녕 설계 도면도 없었다. 대부분이라면 이 즈음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뭐라도 만들어 보자며, 욕조에 도전했다. 마침내 그의 첫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였다.
20년이 흐른 지금, 데이브의 집은 놀라우리만치 넓고 정교했다. 부부가 주로 생활하는 라운지, 데이브의 서재, 와이프 녹의 요가 샬라. 에어비앤비 객실 세 채, 창고, 그리고 세 곳의 사원까지 — 어디든 신의 숨결이 느껴졌다. 조각상, 초상화, 반짝이는 구슬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심지어 화장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유독 눈길을 끌었던 건, 황금빛 장식에 둘러 쌓인 예수 조각상이었다. 구슬이 주변에 뿌려져 있었다. 때로는 그의 후광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수많은 별이 흩뿌려진 은하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천장에는 힌두 신들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파란 얼굴의 시바 신은 언제나 미소를 띤 채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마치 보살핌을 받는 어린 양이라도 된 듯, 마음이 포근해지곤 했다.
나는 모든 신이
자유롭게
어울리기를 바랐어
그의 바람은 집구석구석 녹아들어 있었다. 힌두 신 옆에는 부처가, 그 옆에는 예수가, 그 옆에는 또 다른 조각상이 있었다. 순서가 뒤섞인 채, 누구도 앞서지 않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 모두가 주인공인 구성이었다.
내가 사원의 도록을 만든다면? 이 문구는 반드시 살릴 것이다. — ‘종교가 있든 없든, 어떤 신을 믿든, 경계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신들의 놀이터’
그런데 이토록 신성한 공간 한구석에 장난기 가득한 문양이 있었다. 웃는 얼굴, 붉은 피부, 깃털 모양의 띠. 미국 야구팀의 상징, 와후란다.
“나처럼 1951년에 태어난 캐릭터야.
여러 가지 논란 때문에 2018년에 은퇴하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와후 추장이 좋아.”
더 이상 장식할 곳이 마땅치 않을 때면, 그는 와후 패치로 마무리했다. 덕분에 이 집은 경건하지만 딱딱하지 않았고, 진지하지만 장난기 가득했다. 데이브 성격과 꼭 닮아 있었다.
이곳저곳에 학자의 초상화도 있었다.
카를 융, 조지프 캠벨, 그리고 이름 모를 낯선 얼굴들.
”이들은 내 스승이자 영웅이야.
배운 게 많거든.
그래서 집들이하는 셈 치고 초대한 거야.“
초상화로 초대한다는 상상력, 딱 데이브답다.
“조명은 왜 파란색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바 신 피부가 파란색이거든.
그래서 파란색 불빛을 골랐어.
나를 지켜봐 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이곳은 그의 정신세계이자 박물관, 그리고 어른의 놀이터였다. 종교와 자연, 장난감이 조화롭게 어울린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낯섦보다는 편안함을, 경건함보다는 생기를 느꼈다.
“이 집에 신이 몇 명이 있는지 몰라.”
그러곤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 명 한 명 다 소개할 수는 있지.“
그토록 치열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느냐고. 20년 넘게 하나의 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건 쉽지 않을 테니까.
“수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있었잖아.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기도 했지.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어.”
그는 역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불편함을 딛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려 했던 수많은 시도들의 반복. 삶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는 덧붙였다.
“삶이 편안하지 않다면, 혁명을 일으켜야 돼.
자유는 공짜가 아니야.
싸워서, 견뎌서, 마침내 얻을 수 있는 보석이지.”
“너는 지도에 없는 길을 여행하는 사람이자나.
이제는 너의 소울을 여행해 봐.
넌 정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공간. 앉아 있기만 해도 저절로 숨이 가라앉는 곳. 언젠가 나도 데이브처럼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 길이 평탄하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걸으면 언젠가 닿겠지. 아직도 내 길의 끝이 명확하진 않지만, 내 안의 용기와 지혜는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욕조 하나에서 시작된, 세상에 하나뿐인 데이브의 사원처럼.